무통성무한증을 앓고 있는 준서와 사랑이는 나눔꽃 캠페인 보도 이후 후원금으로 생활비는 물론 심리치료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은 치료를 받은 뒤 자존감이 높아 졌다고 엄마가 전한다. 굿네이버스 제공
준서(12)와 사랑(9)이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유전자 변이로 발생하는 선천성 질환인 ‘무통성무한증’이다. 화상이나 골절에도 아무 느낌이 없고, 땀을 흘리지 않아 체온 조절도 되지 않는다. 아직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아 주사나 약은 따로 없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에너지 조절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성장을 위해 또래보다 2~3배 고열량으로 밥을 먹이고, 뼈 모양이 변형됐기 때문에 신축성이 좋은 고가의 운동화를 신기는 것 정도밖에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지난해 9월30일 식자재 운반업을 하는 아버지 이광호(46)씨가 망막 수술을 해 두 달가량 일을 쉬게 되자 이조차 어려워졌다. 이씨가 홀벌이로 월 200만원 정도 버는 게 수입의 전부였는데, 아예 끊겨 당장 생활비조차 없었다. 어머니 황보배(41)씨는 아이들이 언제 크게 다칠지 몰라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돌봐야 해 일을 하지 못한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한겨레> 나눔꽃 캠페인 보도 이후 후원금 872만원이 모여 생활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올해 여름에 아이들은 처음으로 냉감 소재 옷을 입었다. 준서와 사랑이는 땀이 나지 않아 여름에 찬물을 끼얹고 선풍기로 열을 식혀줘야 한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의 체온을 재면 39도 가까이 나오는 날도 잦다. 엄마·아빠는 냉감 의류를 입히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가격이 부담돼 사주지 못했는데, 올해는 후원금으로 사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옷을 입고 “보드랍고 기분이 좋다”고 했다. 아이들의 새 운동화와 침대, 책상도 마련할 수 있었다.
준서와 사랑이는 1년간 무료로 심리·인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나눔꽃 캠페인 보도를 통해 사연을 알게 된 지역 교육청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해서다. 준서와 사랑이는 각각 경계성 지능장애,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무통성무한증을 앓는 아이들은 고열로 인한 뇌세포 손상으로 지적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는 1년 동안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열 손가락을 사용해 피아노를 치면 뇌에 자극이 된다고 해 보내기 시작했지만 학원비가 부담됐는데, 후원금으로 낼 수 있었다. 피아노 치는 게 재밌다는 사랑이는 황씨에게 “피아노 학원 끊지 마 엄마. 계속 다니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들은 심리·인지 치료를 받은 뒤 자존감이 높아지고 밝아졌다고 한다. 항상 “못하겠다”고 말하던 사랑이는 “한번 해볼게”라고 말하게 됐고, 친구들과 소통을 잘 못 하던 준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하며 몇 시간씩 놀게 됐다. 이전보다 고급 어휘를 사용해 엄마·아빠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되짚어보다’ ‘그후’ ‘이 상황에는’ 같은 말을 이제는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똑똑해졌다는 생각도 들고 기뻤죠.”
이씨는 전보다 가족과 시간을 조금 더 보내고 있다. 이씨는 망막 수술을 하기 전까지 주말에도 거의 매일 일을 해 한 달에 고작 하루나 이틀 쉬었다. 수술한 뒤 건강을 위해 주말 수당을 포기하더라도 쉬는 날을 늘리기로 했다. 지금은 일요일마다 쉬어 한 달에 4일 쉬고 있다. 항상 “아빠가 회사에 안 갔으면 좋겠다”고 하던 아이들은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늘어 좋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는 ‘개그맨’이다. 아빠와 있으면 항상 재밌다며 핸드폰에도 ‘개그맨 아빠’라고 저장해놨다.
준서와 사랑이 가족의 남은 바람은 아이들의 건강이다. “후원 덕분에 힘든 시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지금은 다른 바람 없이 이 병에 대한 연구가 좀 더 이뤄지고, 빨리 치료법이 개발됐으면 좋겠어요.”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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