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지엠에 빌려준 7천억원의 채권 회수를 한달 정도 연기하기로 했다. 예상과 달리 지엠이 일단 한발 양보하는 모양새처럼 보이지만, 한 달 뒤 회수 여부 등에 대해선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아 회사 정상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처로 보긴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인천 부평구 한국지엠 공장에서 열린 한국지엠 이사회에서 지엠은 이달 말로 만기가 다가온 7천억원 규모의 한국지엠 대출금을 산업은행의 경영 실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3월 말까지 회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부평공장에 대한 담보 요구는 철회했다.
지엠이 한국지엠의 채권 회수를 일시 연기하고 부평공장 담보 요구를 포기한 것은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반대 기류가 강경한데다 한국 정부와의 추후 협상에서 득이 될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지엠이 지엠 본사와 계열사로부터 빌린 차입금 3조원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금액은 1조7천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이달 말 만기가 닥친 차입금은 7천억원이다. 지엠은 이 차입금의 만기를 연장하기 위해 한국지엠 부평공장을 담보로 설정하는데 산은이 동의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산은은 공장을 담보로 제공하면 공장 처분에 대한 결정권이 지엠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 반대해 왔다.
산은의 부평공장 담보 제공 동의 건은 지엠이 정부에 제시한 주요 요구안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엠이 이를 포기한 것은 산은의 반대 기류가 주효했다. 산은이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을 합쳐 한국지엠 이사진은 모두 10명으로 구성돼 있다. 공장 담보 설정 안건은 주총 특별결의 사안이어서 85%의 찬성으로 가결해야 하지만 한국지엠의 지분을 17% 보유한 산은이 반대하면 부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애초부터 지엠이 산은을 무시하고 그대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대신 지엠은 이달 말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회수해갈 수 있다는 분위기를 전하며 산은을 압박해왔다. 따라서 지엠이 만기를 연장한 것은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정부와의 협의 분위기를 깨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날 이사회 결과에 대해 한국지엠 쪽은 “정부와 대화가 진전을 보이면서 향후 협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엠이 과연 한국지엠을 살리기 위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이를 위한 진정성 있는 조처를 내놓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지엠의 대출 연장은 2월 말에서 3월 말로 만기를 한달 늘린 임시방편일 뿐이어서, 한국지엠 회생을 위한 의지가 확고한 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날 이사회에서 산은 쪽 이사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하고 싶다는 지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보다 확실하게 ‘만기연장’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홍대선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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