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28일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 것을 뼈대로 한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내놨다.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의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일감몰아주기 구조도 해소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의 자발적 지배구조 개편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3월말을 불과 며칠 안 남겨놓고 내놓은 개선안이다. 이로써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롯데 등 5대 그룹 가운데 삼성만 정부의 요청에 화답하지 않은 셈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이날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그룹사 간 지분 매입·매각을 통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으로 이뤄진 4개 순환출자 고리로 형성돼 있다.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순환출자의 핵심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현대모비스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회사를 쪼개 투자·핵심부품 사업부문은 존속시켜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들고, 모듈·애프터서비스(AS) 부품 사업부문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안을 의결했다.
분할·합병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은 현대글로비스와 기아차, 현대제철 등이 보유한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된다. 현대글로비스, 기아차, 현대제철 등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0.7%, 16.9%, 5.7%씩 보유하고 있다.
지분 인수 자금은 총수 일가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지분을 팔아 마련한다. 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29.9%)도 내다팔기 때문에 일감몰아주기 논란도 해소된다. 정 회장 등 총수 일가가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는 데는 약 4조5천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등의 지분을 팔면 5조∼5조5천억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총수 일가는 이 과정에서 약 1조원을 주식 매각 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로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도소득세는 올해부터 대주주 대상 과세표준이 3억원 이상인 경우 세율이 22%에서 27.5%(주민세 포함)로 상향 조정됐다. 현대차그룹은 “지분 거래 과정에서 대주주는 적합한 재편 비용을 부담해 사회적 책임에 적극 부응할 계획”이라며 “대주주가 글로비스 지분 등을 파는 과정에서 세금을 모두 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이 끝나면 총수 일가는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 30.2%를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는 정 회장만 7.0% 보유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아버지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지배회사인 현대모비스의 2대주주가 되면서 경영권 승계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된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한 대주주와 그룹사 간 지분 거래 시점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과 상장 절차가 완료되는 7월 말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이달 말까지 재벌들에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도록 요구한 바 있다. 공정위는 이번 발표에 대해 “현대차그룹이 시장의 요구에 부응해서 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인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규제와 관련해 총수 일가가 계열사를 통한 간접적인 소유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일감몰아주기 논란이 완전히 불식될지 여부는 향후 관련 법률 개정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재계 2위 현대차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편방안 발표이 아직 개선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삼성 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총수 일가가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편법적으로 축적한 이득을 사실상 지주회사 격인 현대모비스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승계를 위한 포석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곽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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