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뒤).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이 28일 내놓은 사업·지배구조 개편안은 시장의 예상을 깬 것이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총수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팔아 약 1조원의 세금을 내고 순환출자 고리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도 해소하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추진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대조적이다.
29일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사업 및 출자구조 재편안은 편법을 배제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뒀다. 삼성을 거울 삼아 최대한 잡음이 나지 않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정공법’을 택한 것은 제일모직·삼성물산 인수합병의 부작용에 따른 ‘학습효과’ 외에도 확연히 달라진 환경 변화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재벌 총수일가의 편법승계를 더이상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지배구조 개선을 독려해온 정부의 압박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이번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23.3%)에서 존속 현대모비스의 2대 주주가 된다.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대주주가 되면서 경영권 승계에 한발짝 더 다가선 것이다.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출발점은 삼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종잣돈 30억원을 내어 대주주에 올랐고, 이후 현대글로비스는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 덕분에 급성장했다. 종잣돈 30억원은 현재 1조5천억원 이상의 가치가 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옛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48억여원에 인수한 뒤 이후 일감몰아주기·상장 등으로 약 5조원으로 키운 것과 비슷하다. 지분이 적지만 순환출자 방식에 기대어 그룹을 지배한 점도 삼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번 개편에서는 삼성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전량 매각해 세금을 낸다는 점이다. 증권가가 예상한 세금 내지 않는 개편 시나리오와 큰 차이를 보였다. 반면 삼성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시 이 부회장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제일모직에 유리한 합병비율을 산정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럼에도 모두 적정하게 진행된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번 개편에서 최대 수혜는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가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존속 현대모비스 가치가 낮고, 현대글로비스 가치가 높은 게 유리하다. 이미 두 회사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이날 전 거래일보다 4.9% 오른 18만2천원에 장을 마감했다. 장 초반 급등하며 21만4500원에 거래돼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2.87% 하락한 25만4천원에 거래를 마쳤다. 기업 가치 논란으로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반대할 경우 개편 작업은 난관에 부닥칠 수 있다.
특히 총수 일가가 기아차의 존속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할 때 가치 평가가 관건이다. 현재 현대모비스의 1대주주(16.9%)가 기아차이기 때문에 주가뿐만 아니라 경영권 프리미엄도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독립적인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에서 평가한 금액과 기타 연계사항을 고려한 가격으로 이뤄질 것이고, 기아차 투명경영위원회와 이사회에서 거래 적정성에 대한 평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분할·합병 과정에서 특정주주가 아닌 전체 기업 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모비스의 에이에스(AS)·모듈 사업을 글로비스에게 넘겨줘야 하는 이유, 총수 일가의 지분 매입 방법과 시점 등에 대해 시장 의구심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홍대선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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