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배송(퀵플렉스) 기사로 일하는 김아무개씨는 최근 배달 가방(프레시백) 회수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회수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배송 권역을 박탈한다는 쿠팡 본사의 지침 탓이다. 김씨는 “어떤 퀵플 기사들은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하거나 벨을 눌러 통 사정을 하는 등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쓴다고 하는데, 고객 민원이 발생하면 그 역시 배송 권역을 사수하는데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쿠팡이 상품 배달 때 쓴 보랭 가방인 프레시백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배송(퀵플렉스) 기사들에게 매일 할당량을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배송 권역을 박탈하겠다”며 압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배송 권역을 박탈당하면 기사는 일감을 받지 못해 사실상 ‘해고’를 당하는 셈이다. 퀵플렉스 기사들은 “건당 100원을 주고 기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생존권을 놓고 위협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퀵플렉스(이하 퀵플)는 1톤 트럭을 보유한 특수고용직 배송기사에게 건별 수수료를 주고 배송을 맡기는 쿠팡의 간접고용 형태를 말한다.
13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은 지난달 각 지역 영업소에 ‘클렌징 조건 변경 예정’ 안내라는 지침을 내려 “4주 내 3번 이상 프레시백 반납 기준이 85% 이하이면 클렌징한다”고 공지했다. ‘클렌징’은 배송 권역을 박탈하고 계약을 해지한다는 뜻이다. 문제가 된 쿠팡 프레시백은 라면 상자 크기의 보랭 가방을 말한다. 종이 상자와 비닐 등 배송 포장재 사용을 줄이기 위해 쿠팡이 도입했다. 친환경 배송을 위해 만들었지만 프레시백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퀵플 기사는 <한겨레>에 “내 배송 권역의 경우 하루 50~60개의 프레시백을 회수해야 하는데, 이 중 20~30개 정도는 그날 배송이 없는 곳”이라며 “배송이 있는 가구의 프레시백은 건당 100원, 배송이 없는 가구는 200원을 준다. 시간이 결국 돈인 퀵플 기사로서는 프레시백 회수를 위해 배송이 없는 집까지 일일이 돌며 회수를 해야 하니 속이 터진다”고 말했다.
프레시백을 내놓도록 고객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아이스팩과 이물질 등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것도 모두 퀵플 기사의 몫이다. 또다른 한 퀵플 기사는 “프레시백을 바로 문 앞에 안 내놓는 고객이 많아 문자를 보내거나, 정 안 되면 전화를 하고 벨을 눌러 프레시백 회수 요청을 한다. 얼마 전 프레시백에 기저귀를 넣어 내놓은 사람의 사례로 떠들썩했던 것처럼 쓰레기가 담긴 경우도 많아 이를 비우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고 호소했다.
쿠팡로지스틱서비스가 각 영업소에 내려보낸 지침. ‘클렌징’은 배송 권역을 박탈하는 계약 해지를 의미한다. 독자 제공
프레시백 회수율에 따라 연대책임도 묻는다. 쿠팡 본사의 지침을 보면 “문제가 되는 서브라우트(소권역)는 인접한 계약 서브라우트를 연계해서 클렌징한다”고 돼 있다. 즉, 한 권역이 ㄱ, ㄴ, ㄷ, ㄹ이라는 네 개의 소권역으로 나뉠 때, ㄱ의 회수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ㄴ까지, ㄱ·ㄴ의 회수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ㄷ·ㄹ 권역까지 박탈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영업소는 주 단위로 퀵플 기사들의 등급을 매겨 공지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다른 퀵플 기사는 “프레시백을 ‘친환경 정책’이라며 떠들썩하게 홍보한 쿠팡이 회수율이 낮아지자 비용을 더 투입하는 대신 생존권을 담보로 퀵플 기사의 노동력을 착취해 이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 하고 있다. 언론에선 쿠팡의 사상 최고 실적을 찬양하는데, 결국 퀵플 기사처럼 힘없는 약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달성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쿠팡 고객들은 예전처럼 프레시백이 과도하게 쌓이는 문제가 줄어든 것은 다행스럽지만, 시시때때로 오는 퀵플 기사의 연락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박아무개(43)씨는 “이달 들어 쿠팡 기사님이 3번이나 연락을 해 ‘프레시백을 집 앞이 아닌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꼭 내놓아달라’고 당부하더라. 회수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편 같았다”며 “프래시백이 현관 앞에 쌓이는 것도 골치였지만, 이젠 공동현관 앞까지 가져다 둬야 하니 그것도 귀찮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쿠팡로지스틱서비스(CLS)는 고객 편의와 친환경 실천을 위해 영업점과의 계약을 통해 프레시백 회수를 포함한 배송업무를 위탁하고 있으며, 퀵플렉스의 운영 및 관리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책임을 각 영업소 쪽에 떠넘겼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