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리포트│
평소 100만원대 초반이 200만원대 중반
황금연휴에 가파르게 오르는 항공권 값
실제 항공권 값은 판촉 위해 할인된 것?
‘썩은 제품’ 특성이 가격 형성에 영향
평소 100만원대 초반이 200만원대 중반
황금연휴에 가파르게 오르는 항공권 값
실제 항공권 값은 판촉 위해 할인된 것?
‘썩은 제품’ 특성이 가격 형성에 영향
게티이미지뱅크
회사원 남주원씨는 석가탄신일과 어린이날이 있는 5월 첫째 주 황금연휴를 기다렸다. 1월 초, 연휴까지는 아직 넉달이나 남았지만 슬슬 계획을 짜보려던 남씨는 좌절했다. 직장생활 5년을 기념하는 파리 여행을 꿈꿨지만 비싼 항공권 값은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평소 여행 계획을 세우다 둘러보곤 하는 항공권 검색 사이트에서 인천-파리 구간의 직항 왕복 항공권 값은 분명 100만원대 초반이었는데, 그런 값의 표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200만원이 훌쩍 넘는 표만 남았다. 황금연휴라고는 해도 일주일 안팎이라 경유편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경유편도 100만원대 초반부터 시작한다. 5월만 있을쏘냐. 10월 초 추석을 낀 황금연휴를 노려보기로 했다. 검색창에 넣어보니 180만원대 가격이 뜬다! 서둘러 예약하려고 손가락을 푸는데 뜬 단어는 ‘대기.’ 여덟 달이나 남았으니 항공사에서 아직 다 팔지 않은 항공권이 뜨겠지만 값은 180만원에서 점점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황금연휴는 항공권을 황금티켓으로 만들어놨다. 체념한 남씨는 묻는다. “아무리 성수기라지만 평소보다 두 배 이상 뛰는 게 과연 정상인가?” 항공사들은 200만원대 중반의 인천-파리 왕복 항공권 값은 ‘정상’이라고 한다. 게다가 그 값은 판촉을 위해 저렴하게 내놓은 것이란다. 남씨가 비싸서 포기한 그 항공권 값은 ‘할인가’라는 주장이다. 도대체 항공권 가격의 상한선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국토교통부 국제항공과의 김관호 주무관에게 답을 들었다. “항공운임은 공시요금과 시장요금이라는 게 있다. 공시요금은 전 세계 항공사들이 모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 정한다. 이들이 정한 노선별 요금이 해당 노선의 최고 가격 구실을 한다. 그러나 그 값으로는 팔리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공시요금보다 할인한 시장요금으로 팔게 되는 것이다.” 남씨가 사려고 했던 인천-파리 직항노선 공시요금은 무려 348만원에 이른다. 여기에 여러 세금과 할증료가 붙으면 항공권 값은 400만원이나 된다. 항공사들은 권장소비자가격과도 비슷한 개념인 공시요금보다 항공권을 싸게 파는 배경에는 상품이 지닌 특유의 속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항공권은 ‘썩는 제품’(perishable goods)에 속한다. 어떤 시점이 지나면 상품의 가치가 ‘0’이 되는 것을 ‘썩는 제품’이라고 하는데, 항공권과 호텔 숙박권 같은 게 그렇다. 그래서 항공사는 비행기가 뜨기 전에 최대한 많은 좌석을 팔려고 공시요금보다 더 싼 가격에 내놓는다는 논리다. 그러나 ‘저렴’하다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항공사의 해석이다. 공시요금이란 것은 자기들끼리 임의로 정한 금액이다. 특히 황금연휴 같은 성수기에는 항공사와 소비자 사이에 ‘힘의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져 가격 주도권이 항공사 쪽으로 쏠리게 된다. 소비자가 속수무책인 이유에는 가격 형성에 대한 정보 부족도 있다. 단지 온라인에서 항공권 검색을 해서 제시되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금연휴기가 다가오면서 항공권 값이 어찌 될지 미리 알기도 어렵다. 어디까지 값이 오를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불안감 때문에 비싸더라도 더 오를 것에 대비해 구매를 서두르기도 한다. 가격상한선 원래 높다지만 소비자들 씁쓸
소비자정의센터 “항공은 공공재 성격”
“충분한 정보로 선택 가능하게 만들어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의 윤철한 사무국장은 “항공이라는 교통수단은 공공적 성격이 있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이 사전에 별다른 정보 없이 항공사나 여행사가 공급하는 대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항공권 값이나 공급 좌석 등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고지하고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상품을 고를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 세계 항공사들이 모여 정하는 시스템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소비자는 피시나 스마트폰에 뜬 항공권 검색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거듭 ‘새로고침’을 누를 따름이다. 항공사들이 주도하는 복잡한 요금 체계 속에서 가능한 한 ‘손해’를 줄일 방법을 찾을 필요도 있다. 일반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요금을 열심히 검색하는 게 왕도로 통한다. 그런데 아무리 품을 팔아봤자 허탕을 치는 이들을 위해 일반적 검색을 뛰어넘는 전문성이나 ‘집단지성’을 이용해 구매를 돕는 서비스도 등장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한 스타트업 플라이트폭스는 소비자와 항공 예약 전문가가 일대일로 계약을 맺고 소통하며 여정에 적합한 항공권을 찾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항공권 검색엔진이 아닌 사람의 힘에 의존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 서비스는 일반적 검색만으로 항공권을 찾으면 숨어있는 더 나은 조건의 항공권을 놓칠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항공 노선은 하나여도 운항하는 항공사가 여럿이고, 또 이 항공사들이 내놓는 운임 종류가 수십 가지다. 이런 조건을 조합하면 노선 하나에만 수만 종류의 운임이 나오기도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의 수를 다 따지지 못한 일반 검색엔진은 수많은 조합 중 일부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런 틈을 구석구석 뒤져가며 나름의 노하우를 이용해 싼 요금을 발굴한다. 컴퓨터뿐 아니라 사람의 힘에도 기대는 항공권 예약 시스템을 개발한 스타트업은 국내에도 있다. 플라이트그래프라는 곳이다. 김도균 플라이트그래프 부사장은 “항공권은 사람이 더 잘 찾는다. 다만 그것을 쉽게 찾을 수 있는 툴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이트그래프는 집단지성의 힘을 더했다. 누군가 여러 경로를 탐색해 저렴하게 산 항공권이 있다면 그 조건을 따라 해볼 수 있는 ‘팔로 온’ 시스템을 시작했다. 김 부사장은 “누군가가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얻은 합리적인 항공권 구매 노하우를 쉽게 따라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도 5·10월 황금연휴 항공권을 아주 저렴하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소비자로서는 황금연휴라는 시간이 ‘썩는 상품’과 비슷하다. 항공사들은 귀중한 시간을 썩히기 싫으면 돈을 배 이상 더 내라고 요구하는 셈이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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