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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쇼핑·소비자

공기 호흡에는 ‘계급’이 없어야 한다

등록 2017-04-05 15:15수정 2017-04-06 18:59

Weconomy | 소비자리포트_ 가성비’ 좋은 방진제품을 찾아서
그래픽 김승미
그래픽 김승미

‘호흡에도 클래스가 있다.’ 독일제 고급 공기청정기 나노드론의 광고 문구다. 수제 공기청정기임을 내세우는 이 제품 가격은 600만원이 넘는다. 국내 가전회사 공기청정기 역시 100만원이 넘는 제품이 여럿이다. 여유롭지 못한 소비자들은 체념 섞인 분노를 표시한다. 직장인 김아연(26)씨는 “‘공기에도 계급이 있다’는 말이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현실에 더 맞는 말이다. 수십만~수백만원대의 공기청정기가 나오지만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 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백만원대 공기청정기 출시에
시민들 “호흡에 계급 있는 현실”
대체품 발굴 ‘자구책’ 찾아나서

창문필터·방진마스크 등 입소문
재활용품 활용한 청정기도 나와
“공기는 공공재…대책 마련 시급”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식목일인 5일, 각종 유통·생활용품 업체들은 ‘미세먼지 덕에 호황’과 같은 문구를 내세워 수십건의 홍보 자료를 내놓았다. 해당 기업들은 ‘봄’을 맞았지만, 소비자에게는 미세먼지(과거 초미세먼지) 때문에 ‘봄다운 봄’이 사라진 상태다. 소비자들은 야외활동 관련 정보를 찾기에 앞서 미세먼지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을 찾는다. ‘자구책’으로 비싼 공기청정기를 대신할 장비와 생활용품을 발굴하느라 여념없다.

그나마 수백원에서 수천원 가격대 제품들은 찾기도, 사기도 쉬운 편이다. 실내 공기 환기용 창문 필터,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비자들은 생활용품업체인 쓰리엠(3M) 등에서 나온 창문 부착용 자연 환기 필터를 사 설치하고 있다. 또 황사·방역 마스크도 모자라 산업·건설 현장 등에서 쓰는 방진 마스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스크에 여과장치까지 달린 방진 마스크를 쓰고 ‘공기 질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용 후기까지 올라온다. 콧구멍에 꽂는 마스크, 이른바 ‘노스크’도 등장했다. 미국환경청(EPA)은 적절한 실내 환기를 하지 않으면 실외보다 공기 오염이 100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며 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진 왼쪽부터 미세먼지 측정기, 산업용 방진 마스크, 콧구멍에 끼우는 마스크.
사진 왼쪽부터 미세먼지 측정기, 산업용 방진 마스크, 콧구멍에 끼우는 마스크.

별별 자구책을 찾다 손수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공기청정기나 강제환기 장치를 직접 만들고 설치하는 것이다. 국내 일부 업체들은 적은 돈으로 직접 만들어 쓰는 ‘디아이와이(Do It Yourself) 공기청정기’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팔고 있다. 이들 제품은 적은 가격에도 효과가 나쁘지 않다.

직접 씨에이씨(CAC) 김광일 대표와 온라인 쇼핑몰 펀샵의 도움을 받아 공기청정기를 만들고, 공기 질을 측정해 봤다. 씨에이씨의 ‘아워 플래닛 에어’ 디아이와이 공기청정기는 ‘적정기술’을 활용한다. 적정기술은 과학기술 혜택에서 경제적·지역적 여건 때문에 소외된 시민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이 제품의 80%는 재활용품으로 만들었고, 폐기할 때도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값도 4만4천원이라 공기청정기의 높은 가격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이 최근 많이 찾고 있다.

씨에이씨에서 적정기술을 활용해 내놓은 4만4천원짜리 디아이와이(DIY) 공기청정기 ‘아워 플래닛 에어’. 사진 씨에이씨(CAC) 제공
씨에이씨에서 적정기술을 활용해 내놓은 4만4천원짜리 디아이와이(DIY) 공기청정기 ‘아워 플래닛 에어’. 사진 씨에이씨(CAC) 제공
구성품은 재활용 종이로 만든 외부 케이스와 필터 케이스, 공기 순환 장치와 먼지를 거르는 2중 필터로 구성되어 있다. 만드는 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조립도 자세한 설명이 있어 크게 어렵지 않다. 13㎡(4평) 공간에 놓기 적당하며, 소비전력도 낮아 하루 8시간 사용 시 1년 전기료가 500원에 불과하다. ‘먼지몬’이라는 미세먼지 측정기로 자체 제작 공기청정기의 성능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당 100~200㎍으로 몹시 나빠 ‘적색’이 켜졌는데, 공기청정기를 돌리자 0~50㎍ 사이로 떨어져 녹색으로 바뀌었다. 김광일 대표는 “원래는 반지하·고시원 거주자 등 주거취약계층을 위해 만든 적정기술 제품인데, 생활 필수 가전이 되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아 제품으로 출시했다”고 말했다.

또 개별적으로 해결책을 찾던 소비자들은 모임을 만들어 연대한다.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인터넷 카페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의 회원들은 각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 수치를 올리고 공유한다. 이날 오전에만 100여건의 미세먼지 농도 수치 정보가 올라왔다. 카페 회원 주아무개(37)씨는 “정부 차원에서 제공하는 대기질 수치 등의 정보에 한계를 느껴 카페에 가입하게 됐다. 정보 교류뿐 아니라 실질적인 공기질 대책 마련 활동과 관련 집회도 있는데,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공기청정기나 마스크 등을 구비할 때 더 이상 시장원리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며 공공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동천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장(예방의학과 교수)은 “공기는 공공재인데, 공기 오염 방지 및 피해 예방은 시장논리에 맡겨져 있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질병에 걸리면 결국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서라도 공기청정 기술의 안전성·위험성 평가와 적정기술 도입·개발 등을 포함한 공공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세걸 서울환경연대 사무처장 역시 “공기청정기 구매는 사회 보편적인 정책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기청정 기술 및 지식 등을 제공하고 공유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상]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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