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찬 서울우유협동조합 파주 유우진료소장.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1973년 3월, 경기도 파주군 조리면(현 파주시 조리읍) 서울우유협동조합 낙농지원센터 건물에 간판이 하나 올랐다. ‘파주 유우진료소’. 1960년대 말 캐나다와 독일 등에서 젖소가 들어오며 국내 낙농업이 태동하자, 이 회사에서도 젖소(유우) 진료를 전담할 지역별 거점을 처음 마련한 참이었다. 수의사 경력 4년차이던 김영찬(72)씨는 소장이자 유일한 직원이었다.
“소가 귀한 때였어요. 아픈 낌새만 비쳐도 주인은 겁을 먹었죠. 젖소가 새끼를 배면 산파 노릇을 하고, 끙끙대면 야밤에 달려가 살펴봤어요.”
23일 파주시 유우진료소에서 만난 김씨 책상에는 혈액 샘플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보름마다 젖소 혈액을 분석해 분만 시기나 수술 필요성을 판단한다. 서울우유에서 매일 알려주는 우유 등급을 통해 젖소 건강 상태를 역추적하기도 한다. 청진기가 유일한 검진 수단이던 1970년대에 비해 기술 수준은 한결 나아졌다. 식구도 늘었다. 수의사 10여명이 파주·연천·고양·양주 지역 농가 250여곳을 나눠 보름에 한번씩 정기 방문한다.
반백년 경험은 지혜로 쌓였다. “초식동물은 귀가 크거든요. 외부인이 접근하면 도망갈 준비를 하는데, 귀가 처져 있다면 기력이 많이 떨어진 거죠.” 때로는 문진 과정에서 농장 주인과 ‘진실게임’도 이어진다. “주인들은 대개 처음엔 결함을 숨기려 합니다. 주인이 ‘오늘부터 아팠다’고 하면 저는 ‘배변 상태 보니 며칠 됐다’고 하고, 한참 줄다리기를 하죠. 결국엔 주인들이 사실대로 실토해요. 신뢰가 있으니까요.”
한국 젖소는 1년 평균 9373㎏(2017년, 305일 기준)의 우유를 생산한다. 낙농업이 발달한 미국, 이스라엘 등과 견줄 정도다. 그만큼 질병이 잦고, 5년 정도 지나면 우유 생산을 중단시킬 정도로 수명도 짧다. 좁은 목장에서 움직임이 적은 탓에 다리쪽 질병도 빈번하다. “우유가 많이 나오는 소는 병도 달고 살아요. 곡물보다 풀 사료를 선택하고, 적게 먹이라고 당부하죠. 업무의 절반이 ‘잔소리’예요.”
그가 ‘깐깐한’ 검진을 고집하는 데는, ‘건강한 젖소에서 신선한 우유가 나온다’는 원칙 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2000년 구제역을 발견했다. 70년 만에 첫 발병이었다. 농가에서는 광견병으로 치부할 정도였다. 그의 신고로 구제역이 공식 발표됐고 인근의 소와 송아지가 모두 살처분됐다. 그는 이때를 ‘가장 참담한 순간’으로 꼽았다. “더 꼼꼼히 검진하고, 더 열심히 백신을 놓아야겠다고 다짐했죠.”
젖소에 맞춰진 김씨의 일상은 50년째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벽 다섯시면 농가 전화가 빗발친다. 퇴근 뒤에도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밤에도 비상대기한다. 늦겨울 한기가 가시지 않던 지난달에도 새벽 1시께 쇠붙이에 혈관이 찢어진 젖소에게 응급수술을 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대체재가 늘어나면서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 요즘 유일한 고민거리란다. “칼슘 섭취에는 우유가 가장 좋다고 봐요. 제가 70살 넘어서까지 일하는 것도 매일 우유를 1ℓ씩 마신 덕 아니겠어요? 우유 찾는 사람이 있는 한, 저는 계속 ‘젖소 산파’, ‘젖소 주치의’ 할 겁니다.” 김씨가 웃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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