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5성급 호텔이 반값 할인까지 하며 홈쇼핑에 진출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은 지난 24일 지에스(GS)홈쇼핑을 통해 숙박권을 판매했다. 이날 롯데호텔 제주도 현대홈쇼핑을 통해 숙박권을 팔았다. 두 곳 모두 5성급으로, 홈쇼핑 채널을 통한 숙박권 판매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지난 22일 롯데호텔의 4성급 비즈니스호텔인 엘세븐(L7)은 롯데홈쇼핑에서 숙박권을 판매한 바 있다. 4성급 비즈니스호텔 경주 코오롱호텔도 지난 1일에 이어 오는 30일에도 현대홈쇼핑에서 숙박권을 판매한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홈쇼핑에서 숙박권을 판매하면서 가격을 대폭 낮췄다. 수페리어룸 기준으로 세금과 봉사료를 포함해 주중(일~목요일) 객실 1박과 2인 조식을 12만9000원, 주말(금~토요일) 객실 1박과 2인 조식을 16만9000원에 판매했다. 기존 가격이 20만∼30만원대인 걸 고려하면 절반 수준이다. 편성도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저녁 6시20분부터 70분간 방송했다. 엘세븐도 홍대 호텔 루프탑과 롯데홈쇼핑 양평동 본사 스튜디오를 이원 생중계로 연결한 특집방송을 하는 등 홈쇼핑 판매에 공을 들였다.
대형마트에서 사은품을 주는 것처럼 투숙 시간을 늘려주는 상품도 줄줄이 나왔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롯데시티호텔, 노보텔 앰배서더 동대문, 글래드 호텔 등은 기존에는 1박에 최대 20시간 가량이었던 투숙시간을 30시간 가량으로 늘려주는 상품을 출시했다. 5성급 호텔인 서울드래곤시티 호텔과 더 플라자 호텔은 하루 숙박하면 다음에 1박을 더 머무를 수 있는 숙박 ‘1+1’ 상품을 내놨다.
■ 외국인 급감에 내국인 고객 늘려야
5성급 호텔마저 자존심을 굽히고 홈쇼핑이나 ‘1+1’으로 숙박권을 판매하는 이유는 외국인 투숙객이 사실상 끊기다시피 해 기댈 곳이 내국인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 고객뿐이어서다. 기업 행사 등 대관도 줄고 한동안은 외국인 투숙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내국인 고객 대상 판매 채널 다변화와 할인으로 호캉스 고객을 늘리려는 것이다. 지난 22일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4월 한국관광통계’를 보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총 2만9415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8.2% 감소했다. 8만3497명이었던 지난 3월보다도 대폭 줄어든 수준이다.
외국인 투숙객 비율이 높은 서울 호텔은 타격이 특히 클 수밖에 없다. 한국호텔업협회의 ‘2018 호텔업운영현황’을 보면 서울 호텔 투숙객 가운데 외국인 비율은 63.3%로, 31.8%인 부산과 21.7%인 제주에 비해 외국인 비율이 높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엘세븐은 명동·홍대·강남 등 주요 관광지에 위치해 코로나19 전에는 외국인 고객 비율이 70~80% 정도였다”고 말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관계자도 “평소 외국인 고객이 70%였고 특히 평일은 대부분이 비즈니스 차 방문한 외국인 고객이었다”고 말했다.
내국인 고객을 늘리기 위한 호텔들의 시도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의 홈쇼핑 상품은 약 1만8000건 주문돼 주문금액이 24억원에 이른다. 다만 지에스홈쇼핑 관계자는 “워낙 물량을 많이 풀어서 방송 시간 내에 매진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제주는 현대홈쇼핑에서 1박과 2박 상품 모두 방송시간 내에 매진됐고 주문 건수 약 5300건, 주문금액은 24억원이었다. 엘세븐 호텔은 80분 홈쇼핑 방송에 52분 만에 빠른 속도로 매진됐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7700건 가량 주문돼 주문금액이 약 6억원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 이미지 훼손보다 당장 생존이 더 큰 문제
홈쇼핑 판매와 할인으로 반짝 효과를 누릴 수는 있지만 호스트가 계속해 저렴한 가격을 강조하는 홈쇼핑 매체 특성이 고급화 전략을 취해온 특급 호텔에 장기적으로 긍정적일지는 미지수다. 또 호텔 객실 이용료는 날짜별 편차가 커 가격이 유동적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홈쇼핑은 적합한 판매 플랫폼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는 매일 객실 이용료가 저렴하다보니 객실 이용료 편차가 큰 의미가 없어 홈쇼핑 가격 책정이 평소보다 용이하고, 내수 수요만 겨냥한 매체 특성과 내수 고객만 받을 수 있는 호텔의 현 상황과는 맞물린다는 게 호텔업계 설명이다. 또 당장 호텔의 생존 자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장기적인 브랜드 이미지까지 고려할 여력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한국호텔업협회가 서울·경기·인천·부산·제주에 소재한 호텔 2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해 문화체육관광부에 보고한 ‘관광호텔업 월별 동향 조사’를 보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전인 지난 1월 61.7%였던 객실 이용률은 2월 44.4%, 3월에는 22.7%로 감소했다. 주요 호텔의 1분기 실적도 부진했다. 호텔롯데 호텔사업부는 638억원, 호텔신라 호텔·레저부문 178억원, 신세계 조선호텔은 14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5성급인 파크하얏트 서울이 지난 3월27일부터 휴업해 다음달 9일에야 다시 열고, 외국인 관광객이 주로 찾던 명동 크라운파크 호텔도 지난 3월11일부터 이달 31일까지 휴업하는 등 아예 문을 닫은 호텔도 상당수다.
롯데호텔은 홈쇼핑 판매를 대대적으로 홍보한 엘세븐과 달리 롯데호텔 제주는 자체 홍보 없이 진행했다. 판매 채널도 각각 자사 유통망을 활용한 롯데홈쇼핑과 현대홈쇼핑으로 분리했다. 이에 대해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롯데호텔 서울도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홈쇼핑에 상품을 내놓지 않았다. 이미지 관리를 좀더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인터컨티넨탈 코엑스 서울 관계자는 “홈쇼핑 판매에 대해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지만 전기료와 인건비 등 상당한 유지비용이 계속 드는 만큼 객실 판매를 늘리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 판매하는 칵테일. 신세계조선호텔 제공
부대사업에 부쩍 정성 들이는 호텔
발길 묶여 객실 매출 타격받자
자체 침구매장 내고 칵테일 할인도
신라호텔은 식음료 매출이 60%
“자구책 겸 고객친화 마케팅 겨냥”
최근 들어 국내 호텔들이 식당과 식음료와 같은 부대 사업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주 사업인 객실 부문 수익이 크게 줄어든 데 따른 자구책 성격이 짙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과 서울 신라호텔은 음료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지난 22일부터 이달 말까지 칵테일 첫 1잔을 1만2천원에 파는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행사 전 가격은 한 잔에 2만4천원이다. 서울 신라호텔은 올 해 빙수 판매를 예년보다 한 달 이른 지난달 29일부터 시작했다. ‘애플망고 빙수’는 서울 신라호텔 음료 중 대표 메뉴다. 제이더블유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는 몸에 좋은 성분으로 알려진 갈락토 올리고당과 저분자 콜라겐을 넣은 빙수를 팔고 있다. 롯데호텔 제주는 다음달 20일 600평 규모의 레스토랑 ‘더 캔버스’를 연다. 기존 한식당과 일식당 등 3곳을 통합한 뷔페식 식당이다.
자체 상품(PB) 판매에 무게를 두는 호텔도 등장하고 있다. 지난 1일 롯데호텔 서울은 1층에 호텔 침구류 자체상품 단독 매장인 ‘해온 프리미엄 샵’을 열었다. 대부분 호텔이 침구류 자체 상품을 팔고 있지만 단독 매장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글래드호텔은 지난 22일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자체상품인 이불, 베개, 수건 등을 입점해 눈길을 끌었다.
일부 호텔은 부대 사업에서 본업인 객실 부문을 뛰어넘는 매출을 내기도 한다. 서울 신라호텔은 이달 들어 28일 현재까지 식음료 매출이 전체 매출의 60%로 객실 부문 매출보다 많았다.
이러한 식음료와 자체 상품 강화는 매출뿐 아니라 집객효과를 노린 측면도 있다. 롯데호텔 쪽은 “해온 침구는 브랜드 관리를 위한 전략 상품인 만큼 매출 기여도보다는 브랜드 관리와 고객친화 마케팅을 위해 오프라인샵을 열었다”며 “더캔버스도 같은 맥락에서 내국인 호캉스에서 뷔페 이용이 빠질 수 없는 코스가 된 트렌드에 발맞춘 시도”라고 설명했다.
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