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시 가덕산 풍력발전 단지의 발전기 12개 중 6~12호기. 지난 23일 오후 5호기 지점에서 바라본 모습.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제공
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임도는 자갈투성이였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니고는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길은 험하고 가팔랐다. 임도가 끝나고 풍력발전 단지 조성을 위해 새로 낸 길로 들어서도 비포장 상태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길 양옆으로 빽빽이 늘어선 키 큰 낙엽송은 산 정상 부근에도 밀생해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지난 23일 오후 2시반께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된 온도는 섭씨 28도였다. 해발 1200m급 고지대여서 서울 지역에 견줘 7~8도가량 낮았다. 길이 끝나는 막다른 지점에 자리 잡은 거대한 원기둥 밑동에 ‘1’이라고 적은 흰색 글씨가 파란색 바탕에 대비돼 선명했다. 가덕산(강원도 태백) 풍력발전 단지의 발전기 12개 가운데 첫 번째로 지어진 1호기라는 뜻이다. 1호기 쪽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돌아가며 산등성이에 발전기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볼 땐 날렵한 바람개비처럼 보이던 게 가까이 접근하니 위압감을 주는 골리앗 같았다. 원기둥 모양의 지지 축(타워) 높이가 117m라고 하니 ‘자유의 여신상’(93m)보다 높고, ‘남산 타워’(237m)의 절반 수준이다. 지지 축 아랫단의 가장 굵은 부위의 직경은 4.56m 수준이다. 지지 축 안에는 유지·보수를 위해 직원들이 오르내릴 수 있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회전날개(블레이드) 길이는 62m, 무게는 20t에 이른다고 한다.
회전 직경 126m의 날개가 돌면 지지 축 윗단에 설치된 터빈이 따라 돌고 그 과정에서 전기가 생산된다. 전기는 땅속 케이블을 통해 발전소 내 ‘전기실’로 보내진 뒤 지상의 ‘강관주’(강철 전봇대)에 매달린 케이블을 통해 1㎞ 가량 떨어진 인근 원동마을에 있는 ‘변전소’(전력을 송전·배전하기에 적당한 전압으로 바꿔 내보내는 시설)로 이동한 다음 한국전력공사 전력망에 흘러가는 방식으로 납품된다.
방문 당일 12기 가운데 4개는 정지 상태였고, 나머지 8개 발전기 블레이드의 회전 속도 또한 빠르지 않았다. 한 바퀴 도는 데 대개 10초가량 걸렸다. 현장 안내를 한 동서발전 소속 발송배전기술자인 손달현 차장은 “저런 속도에선 전기가 생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바람의 질(풍향과 풍속)이 비교적 좋은 강원도 지역 또한 7~8월엔 풍속이 대개 초속 2~3m 정도여서 풍력발전의 비수기라고 한다. 전기를 생산할 수준의 최소 풍속은 초속 4~5m라 한다.
동서발전은 가덕산 풍력발전 단지 운영 회사인 ‘태백가덕산풍력발전(주)’의 최대주주(34%)이며, 기술 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동서발전과 함께 강원도(34%)가 이 회사의 공동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렸고, 코오롱글로벌(20%), 지역 발전사업 인허가권자인 태백시(10%), 강원도 지역 기업인 (주)동성(2%)도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강원도 태백시 가덕산 풍력발전 단지에 설치된 발전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제공
한국풍력산업협회 자료를 보면, 가덕산 풍력발전 단지는 준공 시점(2020년 11월) 기준으로 전국 107개소(육상 99개소, 해상 9개소, 영광풍력은 육·해상 복합단지) 가운데 105번째로 조성된 곳이자, 주민참여형으로는 첫 사례다. 지방자치단체가 출자자로 나선 국내 첫 풍력발전 사업이기도 하다.
박진영 태백시청 일자리경제과장은 “태백시민 자금 50억원이 가덕산 발전소 단지 조성 사업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발전소 반경 1㎞ 안에 있는 원동마을 주민들이 마을 기업을 설립해 태백시민들로부터 17억원의 펀드를 모집하고, 국가 정책자금 33억원을 지원받아 모은 돈을 발전 법인 채권에 투자해 20년에 걸쳐 투자 이익을 얻는 방식이다.
애초 구상에선 지분 투자 방식이었던 것이 고정이익을 얻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투자 수익은 세전 8.2%, 세후 5% 수준이며 분기마다 지급된다. 투자자는 모두 70명 남짓이다. 발전소 운영 수익의 일부를 주민들이 누릴 수 있게 함으로써 ‘주민 수용성’ 문제를 해결한 사례로 자주 꼽히는 배경이다. 가덕산 발전단지는 앞서 설치된 인근의 매봉산 풍력단지와 달리 백두대간 구간에 들지 않는 점도 주민 수용성을 높인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1월 드론으로 찍은 강원도 태백시 가덕산 풍력발전 단지 전경. 오른 쪽부터 차례로 1~12호기. 태백시청 제공
풍력단지는 태양광에 견줘 대규모로 설치되는 데 따라 해당 지역의 반발을 부르곤 한다. 가덕산 풍력발전소처럼 육상에 설치되는 경우 산림 훼손, 소음 유발 논란으로 사업 허가를 받고도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진척을 보지 못하는 수가 많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이상훈 소장은 “(풍력 발전단지 조성을 위한) 사업 시간이 유럽(3~4년)보다 국내에서 훨씬 긴 5~6년에 이르는 주요인이 바로 주민 수용성 문제”라고 말했다. 주민 참여형 방식으로 민원이 비교적 적었던 편인 가덕산발전 단지 조성 사업도 2016년에 시작해 준공까지 4~5년가량 걸렸다.
태백시는 가덕산 발전단지 조성에 주민참여형 방식을 도입하도록 유도한 데 이어 가덕산 발전소를 포함한 관내 8개 풍력발전소에서 거두는 수익의 일부를 시민들과 나누는 이익 공유제를 추진하고 있다. 이 또한 발전 사업의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류태호 태백시장은 지난 23일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풍력발전회사 순이익의 5~8%를 지역 공헌 사업으로 출연하고 이를 장학사업을 비롯한 공익 목적에 사용하는 쪽으로 발전사들도 뜻을 모으고 있으며 연내 관련 조례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이미 수익 중 일부를 지역에 공헌하고 있는 것을 좀 더 확대하고 제도화·공식화하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미 운영 중인 8개소와 함께 추가로 조성될 예정 아래 발전 사업 허가를 신청한 12개소도 여기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류 시장은 덧붙였다.
태백시는 이익 공유제 도입과 함께 풍력발전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을 갖고 있다. 가덕산 발전단지 조성 1단계 사업에선 지분 10%로 참여한 데서 2단계(2023년 완공), 3단계(2026년 완공 예정)에선 이 비율을 각각 20%, 35%로 높일 것이라고 류 시장은 밝혔다. 풍력발전의 사업성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가덕산 발전소의 사업성은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가덕산풍력발전 이창우 소장은 “본격 가동 뒤 지난 6월까지 이용률이 36.9% 수준으로 집계돼 있다”고 전했다. 풍력발전에 유리한 시기인 1~5월을 포함하고 있어 연간 전체로는 이보다 낮아지더라도 30% 초반대에 이를 것으로 동서발전 쪽은 추정하고 있다.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에 따르면 풍력발전의 전국 평균 이용률은 23~24% 수준이다. 이용률은 최적의 조건에서 지속적으로 가동해 발전용량 최고 한도로 전기를 생산할 때와 비교한 수치다. 이용률 100%는 초속 9~10m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부는 실험실 조건에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상훈 소장은 “재생에너지 발전의 사업성은 지원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용률이 전국 평균치를 넘으면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태백/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풍력발전의 어제와 오늘
국내 풍력발전의 역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그해 11월 제주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일대에 250㎾급 3기를 설치한 게 첫 사례로 기록돼 있다. 사업자는 제주에너지공사이다. 그 뒤 행원 단지에는 8기가 추가 설치돼 11기로 늘었고 발전 용량은 13㎿다.
제주에 이어 전북 군산이 바통을 이어받았고 그 뒤 강원, 경북, 전남, 경기 지역으로 퍼졌다. 올해 1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에 준공된 ‘평창청산’을 포함해 전국에 조성된 대형(1기당 단위용량 100㎾ 이상) 풍력발전 단지는 107개소(발전기 745기, 발전 용량 1.66GW)에 이른다. 육상 99개소(694기, 1.52GW), 해상 9개소(51기, 0.14GW)이다. 영광풍력은 육·해상 복합단지로 양쪽에 다 포함해 구분 집계한 결과다. 육상 풍력발전단지는 이미 많이 조성돼 있기도 한데다 조성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부르는 수가 많아 해상 풍력 쪽으로 무게추가 조금씩 이동해가는 흐름이다.
국내 발전시설에서 풍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미미하다. 2020년 말 기준으로 국내 총 129.2GW 발전시설 중 신·재생에너지는 20.5GW로 15.6% 수준이다. 그 중 풍력에너지는 1.6GW로 전체 발전 용량에 견줘 1.3%,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중에서도 8.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전력 생산량으로 따질 때 비중은 더 작다. 국내 발전원의 총 발전량은 작년 기준 51만5987GWh였고, 이 중 신재생에너지는 2만2386GWh(4.3%), 풍력은 3133GWh(0.6%)였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높아 14.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풍력발전 단지 조성은 앞으로 이어지며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020년 말 기준 전기위원회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아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이 육상 203개소(9.6GW), 해상 33개소(4.7GW)에 이른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