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내걸린 은행 금융상품 광고판 앞에 한 시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1666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대출에 비해 의외로 낮은 연체율이 곧 터질 ‘숨겨진 위험’이 되고 있다. 저금리와 각종 이자·원리금 유예 조치가 연체율을 0.3~0.6%포인트 억누르고 있어서다. 종료가 다가오는 금융 지원 조치를 계속 연장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취약 계층에 점진적 출구를 찾아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공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은 0.9%로 추정된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말(1.1%)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체 가계대출 연체율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5% 내외 수준을 보이다가 1%대까지 하락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0.9% 연체율은 코로나19 위기에 올해 1분기 기준 가계대출 잔액이 1666조원으로 1년 전보다 144조2천억원, 사상 최대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의외로 낮은 수치다. 은행 대출만 좁혀 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은행 가계대출 연체율도 0.17%에 불과하다.
기준금리 인하와 각종 상환 유예 조치가 연체율을 낮추고 있다. 한은은 이 같은 금융 조치가 없었다면 연체율이 0.3~0.6%포인트 더 높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 얘기는 앞으로 금리가 올라가고, 각종 유예 조치가 끝나는 순간 억눌려 있던 연체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한은은 코로나19로 신용위험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면 연체율이 이보다 더욱 뛸 수 있다고 예상한다.
특히 취약 계층 연체가 위험하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 빚이 있으며,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 수 및 보유 부채의 비중은 전체 가계대출(2020년 말 기준)의 각각 6.4%, 5.3%다. 이들의 연체율은 2012~2013년 10%를 상회했지만 지난해 말 6.4%까지 떨어졌다. 다만 비취약차주 연체율(0.27%)보다는 여전히 높다.
취약차주는 금리 인상만으로도 연체율이 최대 2%포인트 뛸 수 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과거 2016년 4분기부터 2019년 1분기까지의 금리 인상 상승기를 보면 취약차주의 연체율이 6.4%에서 8.4%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유예 조치 종료까지 겹치면 연체율은 더욱 올라간다.
문제는 연체율을 낮췄던 조치들이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고한 상태로, 이르면 오는 26일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채무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가 다음달 말 종료돼 연장 여부를 논의 중이다.
정부가 금융 지원을 갑자기 중단하면 안 되지만, 무조건 연장하는 것도 근본적 방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실 폭탄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된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국내 가계부채 리스크 현황과 선제적 관리 방안' 보고서에서 “올해 9월 말 예정된 원리금 상환 유예조치 종료가 취약 가구에 충격이 되지 않도록 점진적 출구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상환 시점의 탄력적 조정, 대환 대출 전환, 장기 분할 상환 등 점진적 상환 방식을 도입하는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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