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값 급등 등 자산 가격 상승과 그에 따른 불평등 확대에 대한 책임을 통화정책에 찾는 시선이 늘고 있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라 돈 빌리기가 쉬워진 환경 탓에 자산 가격 대세 상승에 올라탄 쪽과 그렇지 않은 쪽 간이 격차가 커졌다는 취지다. 기준금리는 지난 8월 한 차례 오르긴 했지만 2020년 3월 이후 1년5개월 간 1%를 밑돌고 있다.
반면 소득 수준과 직업 유무 등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에 불평등의 책임을 물리는 것은 과도하다며 불평등 교정 내지 완화는 재분배 기능을 갖는 재정정책과의의 적절한 정책 조합을 통해 구현해야 한다는 전통적 시각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산 불평등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는 통계청이 작성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담겨있다. 자산에서 부채 뺀 순자산 기준으로 한 ‘지니계수’가 그것이다. 이를 보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지난 2017년(0.584) 이후 매년 상승해 지난해 3월 현재 0.602까지 상승했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1% 아래로 떨어뜨린 시점이 지난해 2월인 점을 염두에 두면 순자산 지니계수는 그 이후 추가 상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올 3월 기준으로 집계한 순자산 지니계수는 오는 12월 발표될 예정이다.
자산 불평등 심화는 지니계수와 같은 ‘불평등 지표’가 없더라도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국내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값이 지난 1년 여 동안 크게 출렁였다. 한국부동산원이 작성하는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보면, 지난해 4월에 견줘 올 7월까지 1년3개월간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14.7%나 뛰었다. 근래 보기드문 급등세였다. 자산을 구매하거나 보유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 간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다는 얘기다. 해당 기간 증권·부동산 시장에 ‘묻지마 투자’‘빚내어 투자’와 같은 과열 양상마저 빚어졌다. 가계부채가 지난 1년 여간 크게 불어난 것도 가계의 자산 매입 열풍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양상에 대해 일부에선 통화정책에 책임을 돌리는 정서가 적지 않다. 정부와 여당에선 부동산 값 급등 이후 책임 공방 과정에서 임대차3법 등 제도 변경 부작용보다 완화적 통화정책에 무게를 두는 시각들이 종종 표출된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저금리 정책’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만 18세 이상 10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2~3년 부동산값 급등 요인으로 '정부 정책 불신'과 ‘투기심리’와 더불어 ‘저금리’를 꼽은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통화정책의 특성에 주목하며 자산 불평등 현상이 불거진 원인을 통화정책에 온전히 돌리기 어렵다고 말한다. 금리 조정으로 경제 전체의 돈 줄기를 움직이는 통화정책은 소득이나 직업 등과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자칫 과도한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한국은행이 경기 대응과 물가 및 금융 안정이란 본연의 기능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에 대해선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통화정책은 각 개인의 소득, 자산, 부채 상황을 거치며 극명하게 다른 결과로 발현될 수 있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발표한
‘통화정책의 분배효과’ 보고서에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통화정책이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때 각 국 계층에 따른 소득, 자산, 부채의 구성과 통화정책 충격에 대한 노출의 정도가 영향의 방향 및 크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한 예로 자산은 적으나 학자금 대출이 많은 취업 준비생에겐 저금리 환경은 취업의 기회와 대출 상환 부담 경감이란 수혜를 주지만 동시에 재산 증식의 기회는 주지 못한다. 금융 재산을 은행에 맡겨 놓고 이자로 생활하는 퇴직자들은 소득이 줄지만, 집이나 주식을 갖고 있다면 자산 증식 수혜를 누릴 수 있다.
엄상민 명지대 교수(경제학)은 “금리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다 보니 개인의 반응 속도와 소득 및 차입 수준 등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다르다는 불평등 논란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재정-통화-금융정책 조합이 중요”
전문가들은 자산 불평등 확대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적절한 정책 조합’에서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통화(한국은행)-재정·금융(정부) 정책이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긍정적 효과는 키우는 쪽으로 상호작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여러 가지 사회 상황이 벌어진 상태에서 통화정책이 운용되다 보니 어려운 계층을 도와주는 사이 상위 계층은 훨씬 더 이득을 보는 불평등 확장에 과거보다 많은 영향을 주게 된 것”이라며 “이 문제를 (재정이) 재분배로 풀어나갈 것인지, 중앙은행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정책은 양면성이 분명히 있는 터라 기본적으로 불평등 대응이 쉽지 않다”며 “금융위기 이후 커진 통화정책 의존도를 낮춰나가면서 어려운 취약계층은 재정 정책과 조합을 이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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