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플레이션 위험 여부는 ‘내년 물가’ 향방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이 아직 인플레이션 위기에 선을 긋는 것은 물가 급등세가 내년엔 진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이 어긋나면 세계 경제는 중앙은행들의 빠른 ‘돈줄 조이기’와 고물가로 인한 경제 구조적 충격이라는 ‘이중고’에 맞닥뜨리게 된다. 앞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내년 물가 전망이 가장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에 부상하는 인플레이션 위험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높은 물가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는 긴축 위험이다. 두 번째는 통화정책 전환을 넘어 과거 1970~1980년대와 같은 충격이 오는 인플레이션 경제 위기 위험이다.
두 가지 위험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내년 물가 추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은 일단 올해 하반기 물가가 예상보다 높으면서 통화정책 방향 전환을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3일(현지시각) 공개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보면, 연준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 또한 지난 8월에 이어 다음 달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유력한 상황이다.
다만 중앙은행들은 시장 충격을 고려해 통화정책 전환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 물가 급등세가 내년 차츰 해소될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연준과 한은은 모두 물가 상승세가 올해 정점을 찍고 내년 2% 안팎, 물가안정목표 수준으로 내려간다고 예상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현재 인플레이션 급등이 시작과 중간 및 끝이 있는 과정”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내년 물가가 높으면 중앙은행들의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연준의 테이퍼링 종료 시점과 직접적인 금리 인상 시점이 앞당겨진다.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 속도도 빨라진다. 중앙은행들의 빠른 ‘돈줄 조이기’는 긴축 발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경제에 큰 위험이 된다.
실제로 최근 중앙은행들의 물가 전망치가 다소 수정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에 봤던 수치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내년에도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물가) 공급 제약이 결국 사라지겠지만 언제까지 지속할지, 그때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물가 전망이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
만약 중앙은행들의 내년 물가 전망이 바뀐다면 ‘수정 수준’도 중요하다. 내년 물가가 상승세를 이어간다고 해도 물가안정목표(2%대)를 크게 넘지 않는 수준이라면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 전환에만 주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가 중앙은행들의 긴축 위험에만 노출되는 것이다. 적정한 수준의 물가 상승은 몇십 년간 이어진 저물가 문제를 고려할 때 실물 경제에는 일부 긍정적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내년에도 물가가 과열되고, 고물가 현상이 길어진다면 본격적으로 인플레이션 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지금은 1970~1980년대와 달리 물가와 경기가 함께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가 고물가로 인한 긴축 위험은 물론 구조적 충격까지 받으면서 회복세가 꺾일 경우 과거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대비해야 한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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