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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현 경기·물가에 ‘빠른 금리 인상’ 맞나?…전문가들 ‘의문’ 제기하고 나섰다

등록 2021-11-12 20:21수정 2021-11-12 20:43

한국경제학회 ‘최근 거시경제 및 통화정책’ 세미나
전직 금통위원 및 거시경제 전문가들 속도조절 언급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 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왔다. 현재 경기와 물가, 가계부채 상황을 볼 때 빠른 금리 인상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완전한 회복 맞나?

한은이 지난 8월부터 금리 인상 행보를 시작한 근거에는 ‘마이너스(-) 국내총생산 갭’(GDP Gap)의 해소가 있다. 지디피갭은 실제 성장률과 한 나라 경제의 최대 성장 능력인 ‘잠재성장률’ 수준의 차이다. 지디피갭이 플러스(+)면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긴축정책이, 지디피갭이 마이너스(-)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완화정책이 검토된다.

그러나 12일 열린 한국경제학회의 ‘최근 거시경제 상황 평가 및 통화정책의 쟁점’ 세미나에서는 지디피갭 변동을 경기 회복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신인석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내년 지디피갭이 플러스(+) 방향으로 변동하는 주된 이유는 경기가 좋아지는 것보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2019년 지디피갭은 플러스를 나타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 미만의 역사상 최저 수준을 나타낸 바 있다. 이것은 지디피갭이 플러스(+)여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 교수는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 상황에 대한 지디피갭 관점의 해석과 그에 따른 통화정책 대응방향의 도출은 오류 위험이 크다”며 “물가목표제로 운영되는 통화정책 운영체계에서 정책방향 논의는 지디피갭보다는 물가 동향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밝혔다.

역시 한은 금통위원을 역임한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대학원 교수도 이날 경기 회복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경제가 수출 반등으로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고 있지만, 추세선(연간 2% 성장 가정)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며 “지난 3년간 성장률을 더해보면 연간 2% 성장하는 것인데,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정도로 빠른 회복세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고용시장에 대해서도 “노동집약적 서비스 부문의 타격이 크고 회복세도 미약한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물가는 너무 높은 편인가?

한은은 최근 높아지고 있는 물가에 대응하기 위한 금리 인상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물가가 추세적으로 높은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신 교수는 한국의 명목 중립금리가 제로(0) 하한에 근접하고 있으며, 오히려 추세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오르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중립금리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등에 압력을 주지 않는 균형 금리다. 중립금리는 경제 상황에 따라 계속 달라지는데,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 그만큼 낮아진다.

신 교수는 “우리나라 실질 중립금리가 0% 내외에 머물 것으로 보이고, 장기 인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추세 인플레이션은 2022년까지 1% 중반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명목 중립금리(실질 중립금리+추세 인플레이션)도 장기적으로 크게 오르지 못하면서 금리를 조정할 수 있는 폭도 좁아진다. 신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명목 중립금리의 제로(0) 하한 근접을 우려하는 이유는 금리 정책의 여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명목 중립금리의 하락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명목 중립금리의 제로 하한 근접과 그로 인해 제기되는 추세 인플레이션 제고 과제가 제대로 주목되고 있는지 우려된다”고 했다.

신 교수는 “한국은행의 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 1.5% 전망이 금통위의 판단과 같다고 할 때, 물가상승률이 목표치 2%를 상회하고 있는 2021년 하반기의 물가동향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이 금통위의 상황인식이라고 하겠다”며 “그렇다면 물가상승률의 지속적인 목표치 하회 문제가 주요국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경시되어도 좋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도 우리나라 물가의 경우 최근 2%를 상회하고 있지만, 내년 다시 1%대로 내려갈 가능성을 염두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추세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오르게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한다”며 “내년 한은의 물가 전망이 연간 1.5%인데, 이 정도라면 금리 인상 요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금리로 대응 맞는가?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가계부채 급증과 자산시장 과열이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금리로 대응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을 나타낸다.

신 교수는 이날 주택 가격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은 도리어 희생 비율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1%포인트 낮추는 대신 주택 가격 상승률을 0.25%포인트 둔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토대로 신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집값 상승 폭 21.3%를 대부분 거품으로 보고, 통화 정책을 통해 3분의 1 수준인 7%포인트 낮춘다고 했을 때 국내총생산이 2.8%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이것은 지난해 코로나19로 국내총생산이 손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3.2%포인트에 근접한 수준이다.

또한 신 교수는 현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을 전세대출이라고 평가했다. 공공기관이 보증을 해주면서 증가한 부채의 경우 금리 인상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공적 보증과 그에 기반한 부채는 기업의 재무상황, 금리 등 시장변수가 아니라 공공부문의 지배구조와 유인체계에 의해 결정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이 추론이 타당하다면, 가계부채 증가의 안정화 수단으로서 금리의 유용성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는 한은이 가계대출 등 금융 불안정을 막을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관호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가계부채 문제는 원칙적으로 거시 건전성 대응이 맞지만, 그것이 잘 작동하지 않고 불안정한 상황일 때 한은이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이 금리 밖에 없다”며 “이번 기회에 금융위원회와 한은 간 거시건전성 정책에 대한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금리 인상 속도조절을”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한은의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해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 김소영 교수는 “확장적 재정 정책은 선별 지원을 중심으로 조절하고, 통화정책은 긴축의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철 교수는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조정할 논리적 근거는 있지만, 이번 11월 금통위 이후에는 통화정책 급박성에 대한 논거는 점차 약해질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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