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경제 규모에 견줘 가계 부채가 늘어나는 속도가 더 가파른 기간이 상당히 긴 탓에 주택 가격 하락을 동반하는 부채 축소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한국은행이 내놨다. 특히 주택 가격 하락과 가계 부채 축소가 함께 나타날 경우 경제 회복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은 13일 펴낸 ‘매크로레버리지 변화의 특징 및 거시경제적 영향’(박창현·남석모·진형태)이란 제목의 이슈노트 보고서에서 이런 분석 결과를 내놨다. 비교 가능한 주요국의 부채 정보를 보유한 국제결제은행(BIS)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이 보고서는, 우선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주요 42개국에서 2000년 이후 나타난 경제규모(명목GDP)에 견준 가계 부채 비율의 증가와 축소의 평균 기간을 따졌다. 그 결과 분석 대상 기간(2000년 1분기~2021년 1분기·총 3435분기·일부 국가는 분석 대상 기간 데이터 부재) 중 40%인 1374분기에서 가계 부채 비율 축소 현상이 나타났다. 2000년 이후 42개국에서 가계 부채 비율이 감소한 기간이 약 8년이었다는 얘기다.
또 연구진은 가계 부채 비율 증가와 감소 기간 간에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도 발견했다. 구체적으로 가계 부채 비율의 감소(디레버리징)는 통상 가계 부채 비율 증가 현상이 3~4년 지속된 이후 나타났으며, 한번 시작된 디레버리징은 평균 2~3년 지속했다. 특히 디레버리징이 진행된 기간(1374분기) 중 23%(약 312분기) 기간 중엔 주택 가격이 매 분기 4% 내외로 하락한 것으로 관찰됐다. 분석 대상 중 디레버리징과 주택가격 하락이 함께 나타난 기간이 가장 긴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남유럽 부채 위기를 연이어 맞았던 스페인(2010년 2분기~2015년 1분기)과 장기 저성장 늪에 빠졌던 일본(2000년 1분기~2004년 2분기)이었다.
한국은 이런 흐름과는 동떨어진 2000년대와 2010년대를 보냈다. 한국은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본격화하면서 2002년 4분기부터 가계 부채 비율이 낮아지다 2004년 3분기부터 3개 분기 연속 디레버리징과 주택 가격 하락이 동반한 시기를 보낸 이후 단 한 번도 디레버리징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은 선진국 중엔 프랑스와 스웨덴 정도만 빼면 찾아보기 어렵다. 보고서는 “한국은 16년간 가계 레버리지(부채)가 누증됐다. 매우 이례적 현상”이라고 짚었다.
이러한 한국의 이례적 흐름은 전체 경제의 잠재 위험에 해당한다는 게 보고서의 시각이다. 특히 점진적으로 늘던 정부 부문 부채 비율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급증한 상황은 이런 우려를 더 키운다. 보고서는 “과거 금융 위기 시에는 민간의 디레버리징을 정부 부문이 흡수하면서 레버리지 변화에 따른 경기 충격을 최소화했다”며 “금번 코로나19 위기 시와 같이 민간·정부 레버리지가 동시에 늘어나 재정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부문의 디레버리징이 일어날 경우 경기 충격이 더욱 크고 회복에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을 포함한 비기축통화국 7개국을 떼어 내 살펴본 결과, 기업을 포함한 민간과 정부의 부채 비율이 장기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날 경우 디레버리징 이후 경제 회복에 5년 이상 시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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