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달 26일 “미국, 유럽 등에 비해서는 아시아 지역의 물가 상승이 급격하지 않다”며 이유 중 하나로 ‘노동 공급’을 꼽았다. 감염 충격이 상대적으로 덜해 구인난으로 인한 임금 상승 압력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숙박 및 음식업 등 일부 대면 서비스 업종에서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커피샵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한 달째 직원이 구해지지 않아 아들이 일손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구인난이 생기는 걸까. 이에 대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 등과 같은 전반적인 노동력 부족이 아닌 코로나19 이전부터 고용 상황이 좋지 않았던 20대와 40대의 일자리 이동이 ‘일부 구인난’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고용 지표를 보면 한국은 해외와 비슷한 구인난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장 구인난이 심한 미국 노동부와 한국 통계청의 통계를 비교해 보면, 지난달 미국 비농업 취업자 수는 1억4861만1천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1월(1억5175만8천명)보다 여전히 314만7천명 적다. 반면 한국의 지난 10월 취업자 수는 2774만1천명으로 2019년 10월(2750만9천명)보다 오히려 23만2천명 많다.
미국인들은 노동시장 복귀가 늦어지고 있다. 11월 경제활동참가율은 61.8%으로 2019년 11월(63.2%)보다 낮다. 한국의 지난 10월 경제활동참가율이 63.2%으로 2년 전 63.6%와 거의 비슷하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미국은 감염 우려 등으로 인한 고령층 조기 퇴직과 교육 기관 폐쇄로 보육 부담이 커진 여성의 노동 시장 참가율 저하 등이 구인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55살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38.4%으로 2019년 11월(40.4%)보다 2%포인트나 하락했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도 같은 기간 1.5%포인트(59%→57.5%)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다. 60살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은 45.7%으로 2019년 10월(44.4%)보다 되레 높아졌다. 한국도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53.8%으로 코로나19 이전(54.1%)에 비해 낮아졌으나, 하락 폭은 0.3%포인트로 미국보다 작다.
따라서 한국은 노동시장 총량으로 볼 때 경제 주체들이 일을 안 하려는 ‘구인난’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현장의 일손은 왜 부족한 걸까.
14일 <한겨레>가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통해 산업별 취업자 수를 연령별로 분석해 본 결과, 올해 10월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0월보다 20만5천명 감소했다. 연령대는 20대가 8만1천명으로 가장 많이 줄었으며, 그 다음이 40대 -6만6천명, 50대 -5만9천명, 30대 -2만5천명, 10대 -2만1천명 등의 순서였다. 60살 이상은 4만7천명 증가했다.
반대로 최근 20대와 40대 취업자 수가 급증한 산업은 배달, 택배 및 관련 물류 창고 일자리 등이 포함되는 운수 및 창고업이었다. 취업자 수는 2019년 10월보다 올해 10월 19만명 늘었는데, 증가 규모 1∼2위가 40대(5만4천명)와 20대(4만5천명)다.
미국도 구인난이 주로 식당 및 여가·호텔 등 대면 서비스업에서 발생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소 다른 양상을 띈다는 것을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는 보여준다. 감염 우려로 인한 일자리 회피가 아닌 산업간 일자리 이동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다른 연령대보다 고용 상황이 취약했던 20대와 40대의 일자리 이동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실업률이 10%대에 육박했던 20대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기업 공채가 더욱 줄었는데, 이 와중에 음식 및 숙박업 등 대면 서비스업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실종됐다. 그러면서 이들이 플랫폼 시장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경제 허리로 불리는 40대 또한 현 정부가 출범 후 태스크포스(TF)를 만들 정도로 일자리 한파에 시달려왔다. 제조업 부진과 자영업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은 연령대가 40대다. 그리고 코로나19 이후 지난 1년 동안(2020년 8월~2021년 8월) 40대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3만4천명 줄어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감소 규모가 가장 컸다. 최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운수 및 창고업을 중심으로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40대 숙박 및 음식업 자영업자 일부도 플랫폼 시장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오민규 노동자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우리는 미국과 같은 전체 구인난이 아닌 ‘부분 구인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청년 일자리는 이전부터 취업문이 좁아져 병목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그나마 접근할 수 있었던 질 낮은 서비스업 일자리도 어려워지자 플랫폼 노동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며 “40대는 자영업 쪽 이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구인난이 일부 업종간 일자리 이동에 원인이 있다면 미국처럼 임금 상승 압력에 따른 물가 부담 가능성은 아직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우려되는 점은 고용의 질 문제다. 20대와 40대가 ‘질 낮은 서비스업’에서 ‘근로자와 사업자 사이에 낀 불안한 플랫폼 노동’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남재욱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 고용 등 적체됐던 문제가 배달 시장 발달, 코로나19 발생 등과 맞물리면서 일자리 이동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며 “플랫폼 노동이 근무 여건이 유연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좋은 일자리라고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동 현상의 지속 여부는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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