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미국 워싱턴DC 라파예트 광장에서 열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에 시위대가 참여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등 서방이 대러 금융제재를 위해 러시아 금융기관의 국제금융결제망(SWIFT·스위프트) 퇴출을 추진하고 있지만, 에너지 거래와 관련된 러시아 주요 은행은 제재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1위 은행인 ‘스베르뱅크’와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이 소유한 은행이 제외 대상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은 가장 강력한 금융제재를 꺼내 들면서도 ‘에너지 딜레마’에 발목이 잡히는 모습이다.
1일(현지시각)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을 보면, 유럽연합(EU)이 제안한 ‘러시아 스위프트 제재’ 초안에는 브이티비(VTB)뱅크, 로시야뱅크, 브이이비(VEB) 등 7곳 은행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외신들은 “(제재 대상으로) 스베르뱅크와 가스프롬뱅크는 초안에 없다”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러시아 은행들을 스위프트망에서 차단하기로 합의했는데, 전면 시행이 아닌 제재 대상을 따로 선별(selected Russian banks)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이 고려하는 7곳이 이날 공개된 것이다. 물론 제재 대상은 최종 발표 전까지 유동적이다. 다만 스위프트 본부가 벨기에로 유럽 관할에 있다는 점에서 유럽연합의 초안은 최종안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초안에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스베르뱅크는 러시아 전체 은행 자산의 약 30%를 보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저축 예금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러시아 최대 금융기관이다. 국영 가스기업 가스프롬 계열사인 가스프롬뱅크(GPB)도 러시아 에너지 대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금융 핵무기’로 불리는 스위프트 제재가 전면에서 일부로, 일부에서도 핵심 은행은 제외하는 등으로 자꾸 힘이 빠지는 것은 에너지 딜레마 때문이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세계 3위 산유국이다. 특히 유럽은 전체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서 조달하고 있다. 스위프트 제재로 러시아와 원자재 결제망이 끊기면 유럽 경제 또한 큰 충격이 불가피한 구조다. 미국 역시 고물가가 경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 등 스위프트 제재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스위프트 제재 발표 날 이미 외신들은 ‘에너지 거래’를 예외로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서방 국가는 러시아 에너지 구매력을 약화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에너지와 관련된 은행은 (스위프트) 결제망에 남아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에너지 딜레마는 스위프트 이전 제재에서도 발견된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발표한 러시아 은행의 달러 거래 및 자금 동결 조처에도 에너지와 농산물 예외 조항(일반 라이센스, General Licenses)이 담겨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유럽연합 초안에서) 스베르뱅크와 가스프롬뱅크가 빠진 것은 에너지 공급과 관련된 러시아의 고립이 세계 경제에 줄 결과에 대해 우려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는 인플레이션 확대란 부작용으로 이어지며 서방 국가 지도자들에게도 정치적 치명상을 안길 수 있다”며 “러시아 경제 제재에 있어 에너지 규제 포함 여부는 계속 쟁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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