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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인플레 시대’ 추경, 통화량 안 늘어도 치솟는 물가 자극

등록 2022-04-24 19:10수정 2022-04-25 02:50

국채 발행해도 돈 유통량 같지만
“정부가 잠겨 있던 민간 돈 흡수 뒤
실물경제에 뿌려줘 물가에 영향”

미국에선 유례없는 고물가 행진
“과도한 재정 정책 오류” 지적 나와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연합뉴스

“추경을 시중 통화를 흡수하는 국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하면 물가 상승 압력이 없지 않나.”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

“국채 직매입이 아니라면 통화량 변동은 없다. 총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지난 19일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이 될 정도로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이 미칠 물가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경이 안그래도 치솟는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다. 추경은 왜 물가를 자극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시중 돈의 총량은 같으나 ‘재정 지출 확대 → 소비 여력 증대 →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주목한다.

■ 추경 통화량 큰 변동 없어

정부가 추경을 해도 시중 통화량(유통되는 화폐의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보유 재원으로 추경을 하면 세금을 걷은 후 다시 민간에 지출하는 것이기에 통화량에 변화는 없다. 통화량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인 M2(광의통화)가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적자 국채 발행으로 조성된 재원으로 추경을 하더라도 한은이 이 국채를 직매입하지 않는 한 근원적으로 광의통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민간인 ㄱ씨가 사고, 정부가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지출하면 다시 민간인 ㄴ씨에게 자금이 흘러간다. 통화의 주인만 ㄱ씨에서 ㄴ씨로 바뀔 뿐이다. 국채를 민간 금융기관인 ㄷ이 매입할 경우에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 정부가 민간인 ㄹ씨에 지출→ㄹ씨 예금’ 등을 거치면서 금융기관에 다시 들어온 예금을 금융기관이 대출 등을 통해 단기적으로 통화량을 늘릴 수는 있다. 그러나 한은은 돈을 빌린 정부가 이를 갚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세금을 거두면서 또 다시 민간 통화량을 흡수하므로 큰 변동이 없다는 시각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총량에 변화가 없는데도 물가가 자극받는 까닭은 뭘까.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겨레>에 “추경을 하면 전체 통화량은 달라지지 않으나 금융시장 등 어딘가 잠겨져 있는 돈을 흡수해 실물경제에 뿌리릴 수 있다”며 “돈이 실물경제에서 돌면서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 추경 ‘추가 수요’ 자극 우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상 중인 추경의 성격은 코로나19에 따른 소상공인 대상 손실보상이나 지원금 확충이다. ‘현금성 이전 지출’에 해당한다. 일부에선 추경의 이런 성격에 주목해 물가와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정부가 코로나19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그 어느때보다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각 가계의 소득을 보전해줄 경우 초과 소비 수요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각국은 공급망 차질로 상품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유례 없는 ‘고물가’를 경험 중이다. 정부가 각 가계에 직접 현금을 꽂아주면 소비 수요가 훨씬 커지면서 물가도 더 올라갈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지난달 말 ‘미국 인플레이션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개인 처분가능소득을 늘려주는 직접 재정 지출 규모가 다른 나라보다 컸다. 이런 조처가 2020년부터 2021년 말까지 근원소비자물가(에너지와 식품류를 제외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포인트 가량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미국의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0년 중반 1%대에서 2021년 말 4.9%까지 뛰었다. 작년부터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경고해온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도 재난지원금 등 정부 이전지출이 담긴 미국 코로나19 구조개혁법 등에 대해 “규모가 과도하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것”이라며 “공공투자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예를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코로나19 관련 재정 지출 규모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관련 재정지출 규모는 지난해 8월 기준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5.5%에 이르지만 한국은 6.4%에 그친다. 하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 물가가 오르는 상황은 한국과 미국 모두 동일하다. 우리나라도 정부 이전 지출 규모가 너무 커지면 수요 압력이 커져 물가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추경의 물가 영향은) 규모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추경 규모가 커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되면 한은의 관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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