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 단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주택 보유자의 올해 부동산 재산세가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되고 종합부동산세 부담은 지난해보다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30일 발표한 ‘긴급 민생 안정 대책’(고물가 대책)에 포함된 내용이다. 부동산 보유세 과세 기준일과 지방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물가 대책이라는 포장지 안에 ‘선거용 부동산 부자 감세’ 정책을 끼워 넣은 셈이다.
이번 민생 대책에서 서민층이 직접적인 수혜 대상이 되는 정책은 전날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에 이미 포함된 방안을 제외하면 학자금 대출 동결 정도뿐이다. 게다가 부동산 보유세 감면도 1주택자를 대상으로 하는 까닭에 세금 경감이 전·월세 세입자의 임차료 등 주거비 부담 완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없다.
이번 조처로 고가 1주택 보유자는 최근 경유 가격 급등 여파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화물차 운전자보다도 더 큰 혜택을 받게 됐다. 정부는 앞서 화물차 운전자 등에게 지급하는 경유 가격 연동 보조금을 리터당 50원 늘리기로 했는데, 12톤(t)이 넘는 대형 화물차 기준 추가 지원금은 월 13만원에 불과하다.
윤인대 기재부 경제정책국 국장은 지난 27일 가진 대책 브리핑에서 “향후 유류비 부담이 더 커지면 추가적으로 계속 대책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 안정 10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책은 크게 세 갈래로 이뤄졌다. 유가·원자재·식료품비 등 물가 급등을 고려한 생활·밥상 물가 안정 대책과 생계비 부담 경감 대책에 중산층·서민 주거 안정 대책이 포함됐다.
주거 안정 대책은 올해 1가구 1주택자의 부동산 재산세·종부세 등 보유세 산정 기준으로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통해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공시가격 급등 전인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보유세와 건강 보험료 등의 산정 기준인 전국의 아파트 공시가격은 집값 상승 여파로 지난해 1년 전에 견줘 19.1%, 올해는 17.2% 급등했다.
구체적으로 올해 1주택자 재산세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한다. 이로 인해 공시가 6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는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했을 때보다 재산세 부담이 7만원, 12억6천만원 초과 주택 보유자는 67만원 감소한다. 비싼 아파트일수록 세금을 많이 깎아주는 셈이다.
기획재정부 쪽은 “현재 시행 중인 공시가격 9억원 이하 1주택자 특례 세율(구간별로 0.05%포인트 감면)을 고려하면 1주택자의 91%를 차지하는 공시가 6억원 이하 주택 보유자는 올해 재산세 부담이 2020년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30일 발표한 ‘긴급 민생 안정 대책’의 주요 내용. 기획재정부 제공
특히 1주택자 종부세는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데 더해,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추가로 인하해 세금 부담을 확 줄여주기로 했다.
종부세는 공시가격 11억원 초과 1주택자, 6억원 초과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보유 부동산 가격을 모두 합친 금액에 각각 11억원과 6억원을 공제한 뒤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곱해서 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과세표준)을 구한다. 이 공정가액 비율은 올해 100%를 적용할 예정이었으나, 이 비율을 낮춰 종부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아파트 공시가격이 실제 시세의 71.5%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집값이 15억원을 넘는 서울 강남권 등 한강 이남 지역의 ‘똘똘한 한 채’ 보유자가 종부세 감세 정책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는 8월까지 종부세 공정시장가액 비율 인하 안을 확정하고, 재산세·종부세 패키지 감면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및 종부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대선 때 종부세 공정가액 비율을 95%로 동결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이전 정부에서 수립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도 백지화해 내년에 2년치 공시가 상승분이 한꺼번에 반영되는 일도 없애기로 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을 오는 2030년까지 시세의 9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기존 정책 방향을 뒤집어 내년도 보유세 부담을 낮추겠다는 거다.
아울러 서울 등 조정 대상 지역 내 주택에 살다가 조정 지역에 새 집을 산 일시적 2주택자가 2년 안에 기존 주택을 팔면 취득세 중과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현재 조정 지역 내 일시적 2주택자는 신규 주택을 살 때 1주택자 취득세율(1∼3%)을 적용받고 1년 안에 종전 주택을 처분하지 않으면 취득세 5∼7%를 추가로 추징당하는데, 이달 10일부터 처분 기간을 1년 더 늘려주겠다는 의미다.
주거 안정 대책에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 방안도 집어넣었다. 정부는 오는 7∼9월 중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현재 60∼70%에서 80%로 올리고, 만 20∼39살 청년층의 경우 대출자 소득에 견줘 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시 미래 소득을 확대 반영해 대출액을 늘려주기로 했다.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50년 만기 주택 담보대출 정책 상품도 8월에 출시할 예정이다.
■물가대책은 생산자 지원 초점…가격 인하효과는?
이 밖에 물가 안정 대책은 생산자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음달부터 식용유·돼지고기·플라스틱 원료인 나프타 등 수입 품목 14개의 관세를 길게는 올해 연말까지 확대 인하하고, 수입 커피·코코아 원두(볶은 원두 제외)와 병·캔 등에 담은 김치·된장 등 가공식품의 부가가치세를 내년까지 면제해 가격 인하를 유도한다.
또 올해 2학기 학자금 대출 금리를 1학기(1.7%) 수준으로 동결하고, 승용차 살 때 부담하는 개별소비세 30% 감면(세율 3.5% 적용) 조처를 올해 말까지 6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데이터 사용량이 월 20기가바이트(GB) 내외인 소비자를 위한 5세대 이동 통신(5G) 중간 요금제 출시도 유도할 계획이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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