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탄소중립 ‘씨앗’ 심는 귀촌 농민
파주 ‘평화마을 짓자’
30대~70대 교사·예술가 등 귀농
농약·화학비료 물론 비닐도 안써
지속가능 ‘퍼머컬처’ 농법 경작
아산 ‘예꽃재 마을’
태양열·지열로 전기 만들고
난방 에너지 소비율 일반 전원주택의 40%
“에어컨 맘껏 틀어도 추가요금 8천원”
‘홍성유기농영농조합’
60%가 40~50대인 젊은 농촌조합
“농촌 탄소중립 달성, 정부 역할 중요”
파주 ‘평화마을 짓자’
30대~70대 교사·예술가 등 귀농
농약·화학비료 물론 비닐도 안써
지속가능 ‘퍼머컬처’ 농법 경작
아산 ‘예꽃재 마을’
태양열·지열로 전기 만들고
난방 에너지 소비율 일반 전원주택의 40%
“에어컨 맘껏 틀어도 추가요금 8천원”
‘홍성유기농영농조합’
60%가 40~50대인 젊은 농촌조합
“농촌 탄소중립 달성, 정부 역할 중요”
귀촌·귀농은 베이비붐 세대(50~60대)의 ‘버킷리스트’가 된 지 오래다. 19살 이상 도시민 중 5년 안에 귀촌을 하려고 준비 중인 인구가 485만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2019년)도 있다. 하지만 농촌도 기후변화에 책임이 적지 않다. 전세계 온실가스 연간 배출량(510억톤)의 19%를 차지한다.(<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빌 게이츠, 2021) 교통과 운송 분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16%)보다 많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면서 탄소중립에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에 터잡기 공사가 한창인 ‘평화마을 짓자’는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에너지·식량 자립 귀촌 마을이다.
“에너지와 식량 문제에서 자립해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함께 귀촌하기로 했죠. 마을 이름도 그런 의미를 담고 있고요.” 지난 10일 이 마을에서 만난 정진화씨가 파주 접경지역으로 귀촌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평화마을 짓자’는 정씨와 함께 귀촌하기로 한 사람들이 만든 사단법인 이름이기도 하다. 법인은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정씨는 이 법인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0년 8월 창립총회 당시 53명이었던 회원은 3년이 지난 지금 109명으로 두 배 이상이 됐다. 3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고르고 교사, 예술가, 출판인, 유기농 농사꾼 등 직업도 다양하다. 입주를 신청한 16가구 중 5가구는 올해 안에 ‘평화마을 짓자’의 1세대 주민이 된다. 정씨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마을에 들어설 주택은 모두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하도록 설계됐다. 에너지 자립을 최대한 실천하기 위해서다.
눌노리에서 3㎞ 떨어진 곳에 이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1000평 규모의 밭이 있다. 이 밭은 지속가능한 농사를 추구하는 ‘퍼머컬처’ 농법으로 경작된다. ‘영구적’(퍼머넌트)이란 말과 ‘농업’(애그리컬처) 또는 ‘문화’(컬처)의 합성어인 퍼머컬처는 자연과 인간이 모두 지속가능한 삶을 지향하는 생활 방식이다.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990년대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는 물론 비닐도 사용하지 않는다. 최대한 자연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 게 목표다. 밭에는 감자, 고구마, 오이 등 각종 농산물 말고도 해당화, 맨드라미, 백일홍 등 꽃들도 심는다. “인간에겐 먹고사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죠. 퍼머컬처는 일종의 생태정원을 가꾸는 일인데, 그런 의미에서 농부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어요.” 회원인 천호균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들이 생산한 작물은 지난 4일 파주시 헤이리 마을에서 열린 ‘햇빛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햇빛장은 유기농을 비롯한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된 먹거리를 거래하는 일종의 로컬푸드 마켓으로 올해 처음 열렸다.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기후위기와 자연·인간의 공존, 평화 등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에 가깝다. 천연 소재 의류와 약산성 샴푸바, 제로 웨이스트 보자기 등을 직접 만드는 체험 행사도 열렸다.
이들이 유기농을 고집하는 이유는 땅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땅은 훌륭한 탄소저장고 기능을 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초지 1㎡당 연간 최대 40g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데, 특히 콩을 재배하는 초지는 탄소흡수량이 39% 증가한다. 또 농지 1헥타르당 1톤의 탄소를 흡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지의 탄소 흡수 기능은 더욱 향상된다. 유기농이 기후위기의 좋은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화마을 짓자’가 모델로 삼은 마을은 충남 홍성의 홍동 마을이다. 풀무학교로 유명한 이 마을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유기농법을 도입한 곳이다. 1975년 일본의 유기농단체인 애농회 대표가 풀무학교를 방문해 유기농에 대한 강의를 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의 강의를 들은 풀무학교 교사들이 유기농을 공부해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이 학생들이 졸업 후 홍동 지역에서 유기농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논에 오리를 풀어 해충을 없애는 오리농법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본 애농회와 정기적으로 교류하면서 홍동 마을을 유기농의 메카로 발전시켰다.
홍동 마을에 귀촌·귀농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 지역의 유기농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다. 1996년 귀농운동본부가 생기면서 귀촌·귀농에 대한 저변이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1997년 발생한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생계형 귀농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홍동 마을로 귀촌한 이들은 일반 귀농과 성격이 달랐다. 이들은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인 생태 공동체를 꿈꿨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교육과 각종 문화 활동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의 꿈은 유기농을 고집해온 홍동 마을에서 빛을 발했고 이곳을 국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귀촌·귀농 마을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홍동 마을에는 현재 생활협동조합(생협)을 비롯해 여러 커뮤니티가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 농업생산조직인 홍성유기농영농조합은 농작물을 생산할 뿐 아니라 유통·판매까지 하는 조직이다. 2012년 20~30대 젊은 귀촌인 25명이 협업농장으로 시작한 이 조합은 지금 생산자 조합원만 120명이 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가운데 50%가 귀촌 인구다. “도시를 떠난 20~30대가 정착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중간에 도시로 되돌아간 이들도 많았지만, 유기농에 관심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 남아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지난 7일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조대성 대표는 “조합원의 60%가 40~50대로 농촌에서 흔치 않은 젊은 조합”이라고 소개했다. 12년 전인 2010년에 귀촌한 그는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뒤 대기업 계열 아트센터에서 전시·공연 관련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다. 풀무학교에 개설된 2년 과정의 농업 전공부를 졸업한 뒤 졸업생들과 함께 홍동 마을에 정착했다. 하지만 유기농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벼농사의 경우 유기농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업에 비해 생산비용은 4.6배나 높지만 수매 단가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아 소득은 오히려 더 적다.
밭작물은 관행농업보다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지만, 까다로운 유기농 인증제도의 벽을 넘어야 한다. 유기농 인증이 취소되면 일반 작물보다 비싸게 팔 수 없게 돼 큰 타격을 받는다. 조 대표도 2018년에 유기농 인증 취소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가 1년 내내 정성 들여 유기농으로 재배한 상추에서 잔류 농약이 검출된 것이다. “딸기 농사를 짓던 밭을 임대했는데 땅 주인이 뿌린 농약이 토양에 남아 있다가 내가 심은 상추에서 나온 거죠. 기준치의 50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아주 적은 양이었는데 규정은 규정이니까….” 유기농 인증이 취소되면 1년 지나야 인증 신청을 다시 할 수 있다. 유기농 인증이 취소된 작물은 일반 작물과 같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맘카페 등에 수소문해 가까스로 상추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는 “유기농의 목적이 농약과 화학비료로 오염된 토양을 자연 상태로 회복하는 것인데, 그 과정을 보지 않고 잔류 농약 검출 여부로만 따져서 판단한다. 그래서 유기농을 하는 농민들은 항상 불안감을 갖고 있다. 잘못된 규제가 유기농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유기농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사용하도록 하는 등의 정책은 유기농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때 정부가 코로나 대응책으로 친환경농산물을 임산부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3년째 시범사업으로 묶여 있어요.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투입할 의지가 별로 없는 거죠. 유기농도 소비자 수요가 있어야 발전합니다.” 그는 “농촌의 탄소중립 달성에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마을 짓자’의 에너지 자립 모델 중 하나가 충남 아산에 있는 예꽃재 마을이다. 2015년 입주를 시작한 이 마을은 태양열과 지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난방도 한다. 에너지 소비율이 일반 전원주택의 40% 수준이다.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조종현씨는 3년 전 기록적 폭염이 닥친 여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주민 단톡방에 ‘전기요금 폭탄 맞았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깜짝 놀라서 요금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8000원’이라고 해서 다들 빵 터졌죠. 에어컨을 맘껏 틀었는데도 추가 요금이 8천원밖에 안 나왔던 거예요.” 이 마을은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지원사업에 선정돼 지열 난방에 들어가는 전기는 산업용 전기요금(월 3만원)을 낸다. 겨울철인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월 15만원을 낸다.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일반 전원주택은 겨울철에 아무리 적게 잡아도 월 100만원의 난방비가 들어간다. 에너지 가성비가 일반 전원주택에 견줘 비교가 안 된다. 조씨는 “태양광 패널과 지열 보일러 설치 비용은 8년이 지나면 손익분기점을 넘는다”고 말했다.
예꽃재 마을은 10년 전 공동 육아와 에너지 자립을 추구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조합원을 모집했다. 33가구가 모두 귀촌한 주민들이다. 마을 이름은 ‘예술이 꽃피는 재미난 마을’이란 뜻이다. 조씨는 “귀촌 마을이 지속가능하려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홍성 아산 파주/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cjlee@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4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열린 로컬푸드 마켓 ‘햇빛장’에서 주민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고르고 있다. 천호균씨 제공
지난 7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서 주민들이 생협 매장에 납품할 쌈채소 등을 포장하고 있다. 홍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7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성유기농영농조합에서 조대성 대표이사가 조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홍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7일 충남 아산시 송악면 예꽃재마을 전경. 전체 33가구의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아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조종현 예꽃재마을 이장이 7일 마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산/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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