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부족한데 방은 남아도는 부동산 구조의 역설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 청년이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대 ㄱ씨는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쪽방과 고시원을 오가며 살았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했고, 키워주신 조부모는 ㄱ씨가 군복무를 마친 뒤 한 분은 사망하고 한 분은 실직해 함께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코로나19는 어렵사리 생계를 유지하게 해주던 일용직 일자리마저 앗아갔다. 돈 벌 길이 사라진 ㄱ씨는 임대료를 계속 연체했고, 끝내 노숙 생활로 접어들었다. 삶을 파고드는 각종 위기를 넘어설 인적·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했던 ㄱ씨는, 코로나19 위기를 만나 끝내 주거 ‘상실’ 가구가 되고 만 것이다.
ㄱ씨처럼 애초 주거 사정이 안정적이지 않다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재난이 닥치면 살 집을 아예 잃어버릴 위기가 있는 ‘주거 위기 가구’가 50만 가구를 넘어선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정부의 긴급 주거지원(위기 상황 때 가구원 수에 맞춰 임시 거주장소 또는 주거비 지원), 비적정 주택 상향 지원(쪽방 등 비주택에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 지원), 각 지방자치단체 주거복지센터의 긴급지원이나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6∼7만 가구에 그쳐 지원 규모를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연구원 보고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거위기가구 진단과 대응전략’ 발췌.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토연구원은 27일 펴낸 주간 국토정책 브리프 871호에, 이런 내용으로 지난해 발간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주거위기가구 진단과 대응전략’ 보고서를 실어 소개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장 등 연구진은 직업, 거주공간 점유형태, 월세와 보증금 규모, 가구원 수 등을 고려했을 때 잠재적 주거 위기가구는 최소 25만9천에서 최대 51만2천가구 규모일 것으로 분석했다.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애초 주거여건이 열악한 계층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득이 감소하는 불안정한 직업군, 원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시설 거주자 등까지 감안한 분석이다.
그러나 정부의 주거지원은 이미 매우 취약해진 ‘뒤’이거나,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장애인, 독거 노인처럼 제한된 사례에 초점을 두고 이뤄지고 있다. 연구진은 “향후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위기가 주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되는 가운데, 국외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주거위기가구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반면에 우리는 주거위기 가구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했고, 사전적 지원 체계도 확립되어 있지 않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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