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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경기 먹구름인데 감세·건전성 외치며 재정 손발 묶는 정부

등록 2022-07-18 06:00수정 2022-07-18 09:39

물가·금리 뛰고 코로나 재확산
소비심리 옥죄며 내수도 비상

윤 정부 부자감세, 곳간 비우고
재정 적자로 이어질 가능성 커

물가 억제 금리 인상은 불가피
정부 지출 올가미 씌우는 대신
취약층 보호·경기 적극 대응을
서울 중구 명동 인근 지하상가의 한 옷 가게에서 상인이 옷을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명동 인근 지하상가의 한 옷 가게에서 상인이 옷을 진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사상 최초로 내디딘 ‘빅스텝’(한 번에 0.50%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은 당분간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질 것이라는 신호탄이다. 중앙은행이 경기 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물가를 끌어내리겠다고 선언한 것이어서다. 추가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경우 소비·투자 둔화 등 경기가 가라앉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 등 정책 당국은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 경제의 ‘믿을 구석’으로 내수를 꼽아왔다.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지만, 일상 회복으로 살아난 도소매·숙박·음식점업 등 동네 상권 소비가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5월 서비스업 생산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석 달 연속 1%(전월 대비) 넘게 성장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사정은 다르다. 뛰는 물가와 금리·이자 부담이 소비 심리를 누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재확산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빅스텝을 단행한 뒤 기자 간담회에서 “민간 소비가 저에게도 큰 걱정”이라고 했다. 한은은 기준금리를 1%포인트 올리면 연간 성장률이 0.25%포인트 내려갈 것으로 추산한다. 애초 한은의 올해 경제 성장률 예상치는 2.7%였지만, 이번 빅스텝을 포함해 올해 연말까지 금리가 1%포인트가량 인상되면 성장률은 2% 초중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대응이다. 물가와 금리 동반 상승으로 경기가 꺾이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서민·취약계층이다. 한은으로선 고물가의 불길을 잡고 환율 방어를 위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치를 찍으며 미국은 물론, 한국 중앙은행도 금리 인상의 고삐를 바짝 죄야 할 판이다.

남은 건 정부의 재정 정책이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경기를 꺼뜨리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지원하는 ‘줄타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기업 법인세 등에 대한 대규모 감세를 재정 운용의 뼈대로 삼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부유층과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더 걷어 물가 상승을 억제하려는 부자 증세를 추진하는 것과 정반대 방향이다.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원는 “법인세 감세는, 주택 공급을 꾸준히 늘리면 집값이 안정되는 것처럼 그 효과가 1∼2년 이내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펴는 구조적인 정책”이라며 “증세와 감세 모두 단기 대책이 아니지만, 지금 물가 상황만 보면 차라리 정부가 돈을 흡수하는 증세가 낫다”고 지적했다. 애초 감세 정책의 초점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경기·물가 관리와 무관하다는 얘기다.

경기 불확실성이 큰 시기엔 감세 조처가 기업의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부의 세수 기반을 해치며 재정 적자만 낳을 가능성도 크다. 경기 침체 때 동원할 정부의 실탄이 바닥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가 감세로 곳간을 비우면서 재정 건전성도 강화하겠다고 나선 건 스스로 정책의 손발을 묶어버리는 꼴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고물가 시기인 만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일시적으로 불어났던 지출을 되돌리며 재정 팽창을 자제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정부 지출에 ‘올가미’를 씌우는 건 자칫 경기 대응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직적 재정 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우려는 재정당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기재부의 한 국장급 인사는 “인플레이션(기조적 물가 상승)으로 돈 가치가 하락하며 정부만 빚이 줄어드는 이득을 보고 민간은 어려움을 겪는 마당에 재정건전성 확보 같은 교과서적인 얘기를 굳이 강조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와 정책 기조가 비슷했던 이명박 정부도 2009년 연간 재정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3%를 넘었다. 현 정부가 마련한 재정건전성 기준에 미달하는 셈이다. 이는 당시 대대적인 감세로 정부 세수에 구멍이 나고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을 위해 지출은 늘렸던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는 결국 정권 후반기인 2011년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 3억원 초과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부자 증세’를 단행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와 환율 사정 등을 고려했을 때 통화정책은 당분간 금리 인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 재량으로 쓸 수 있는 재정을 적극적으로 잘 사용하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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