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시가 15억원 넘는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서울 등의 주택 매매 거래가 급감세를 보이자 대출 규제를 풀어 수요를 떠받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시장 금리 인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가계 대출 증가와 부동산 시장 자극 등 거시 경제의 위험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4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추석 연휴 직후에 이 같은 내용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통화에서 “정책적 고려에 따라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을 풀어주는 걸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등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 금지는 앞서 지난 2019년 12월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에 담겼던 조처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때 지역 및 집값에 관계없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으나, 지난달부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만 엘티브이를 80%로 완화하고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대출 금지 조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규제 폐지 쪽으로 돌아선 건 부동산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는 판단 때문으로 읽힌다. 최근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거래도 줄자 대출 규제를 풀어 부동산 경기 침체를 막겠다는 의도다. 올해 7월 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모두 639건으로 지난해 7월(4679건)에 견줘 86% 감소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지난주(8월29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수급지수는 81.8로 한 주 전(82.9)보다 1.1포인트 하락했다. 매매 수급 지수는 기준선인 100보다 낮으면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17주 연속 내리며 2019년 7월1일(80.3) 이후 약 3년 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택 수요가 쪼그라들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대출 규제를 풀면 가계 부채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규제 완화 조처로 가까스로 억눌러 놓은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꿈틀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대 은행(케이비(KB)국민·신한·하나·우리·엔에이치(NH)농협)의 가계대출 총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696조4509억원으로, 전월보다 9857억원 감소했다. 5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1월 감소세로 돌아선 뒤 8개월 연속 줄어든 상태다.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 부담에도 규제를 푸는 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는 기준금리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로 예년과 같은 투자 열풍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부터 총 대출액이 1억원을 넘는 차주들에게는 디에스아르 40%가 적용되고 있다. 소득이 많지 않으면 규제가 풀려도 대출 한도에 제약이 생긴다. 결국 이렇게 될 경우 15억원 주담대 규제 완화는 고소득층에만 유리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박종오 기자,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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