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3년여 만에 최고치인 1400원 돌파를 눈앞에 두자 외환당국도 부산한 모습이다. 개입 강도를 높이며 시장과의 줄다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며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역전 및 국내 무역적자 등 구조적 이유로, ‘킹달러’(달러 초강세)가 빚은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당국의 주시와 개입에도 1400원 돌파는 당장 이번주초부터 또다시 초읽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기획재정부는 18일 환율 이슈를 담당하는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등 1급 이상 간부들이 참석하는 정책 점검 회의를 했다. 일요일에도 내부 회의를 열어 물가, 환율 동향 등을 점검한 것이다. 기재부 등 외환당국은 앞서 지난 15∼16일 시장에 보유 달러를 대규모로 내다 팔며 적극적인 원-달러 환율 방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을 저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과도하게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지만 저희도 이런 현상을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 게 신호탄이다.
원-달러 환율은 15일 장중 1397.9원까지 밀려 올라갔다가 1393.7원에 장을 마쳤다. 장중 고가 기준으로는 2009년 3월31일(1422.0원) 이후 최고치다. 그러나 이날 오후 외환당국이 “시장 내 쏠림 가능성 등에 대해 경계감을 갖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구두 개입에 나서며 상승폭을 반납했다. 16일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1399.0원에 개장했으나 당국이 ‘종가 관리’에 나선 것으로 추정되면서 1388.0원에 마감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특정 레벨(원-달러 환율 1400원)을 염두에 둔 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당국이 환율에 손을 놓고 있다는 인식이 생기지 않도록 타이트한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외환당국은 최근 달러 거래를 하는 시중 외국환은행들에 달러 주문 동향과 은행별 외환 매수·매도 포지션을 실시간 보고해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도 외환 수급 상황을 보고받고 있으나 환투기 등 불필요한 달러 매수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셈이다.
하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이 환율 안정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미국의 지난 8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 8.3%)이 시장 예상을 넘어서며 당장 오는 21∼22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회의에서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재 2.25∼2.50%인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2.50%)을 웃도는 금리 역전이 벌어지며 자본 유출, 원화 약세 등을 부채질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4월부터 이달까지 6개월 연속 무역적자(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것도 환율엔 악재다. 외국과의 교역에서 국내에 들어오는 것보다 국외로 나가는 달러가 많아지며 환율 상승 압력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시장에서도 연내 원-달러 환율 1400원 돌파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당분간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뾰족한 재료가 없다는 것이다. 김효진 케이비(KB)증권 연구위원은 “지난 10여년간 원-달러 환율의 상방 저항선 역할을 해온 1250원을 돌파한 이후 의미 있는 저항선이 없는 상황”이라며 “뚜렷한 저항선이 없고 환율 고점 전망의 근거가 빈약하며 불안한 대외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원-달러 환율이 1450원에 근접한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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