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이주를 가장한 국외 편법 증여 구조도. 국세청 제공
ㄱ씨는 외국으로 이주한다며 재산을 자기 명의의 해외 계좌로 보낸 뒤 실제론 국내에 거주했다. 그가 보낸 돈은 외국에서 사는 미성년 자녀 명의 해외 계좌로 이체돼 자녀가 국내 부동산을 구매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의심된다. 국내에 살지 않는 비거주자끼리 해외 재산을 증여하면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다.
건설업자 ㄴ씨는 토지 소유권을 ㄴ씨가 지분 100%를 가진 적자 법인에 헐값에 넘겼다. 이 땅은 다시 부동산 개발 업체에 고가에 팔렸지만, 양도차익(매도가격-매수가격) 수십억원엔 세금이 한 푼도 과세되지 않았다. 적자 법인인 까닭에 법인세를 내지 않은 것이다. 과세 당국은 ㄴ씨가 사실상 부동산 개발 업체에 땅을 직접 팔면서 중간에 적자 회사를 끼워 넣어 거액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은 6일 “변칙 상속·증여 혐의가 있는 고액 자산가와 자녀 99명을 대상으로 세무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자 유형은 건설업자 ㄴ씨와 같은 허위·통정 거래(짜고 하는 거래) 혐의자 57명, 해외 이민을 가장한 탈세 혐의자 21명, 직원 명의 차명 계좌를 이용한 우회 증여자 21명 등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들은 정확한 탈세액은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다”며 “해외 이주를 가장한 탈세 혐의자 중에는 보유 재산이 160억원 정도에 이르는 자산가도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주로 자녀가 출처가 미심쩍은 자금을 이용해 국내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취득하다가 꼬리가 잡혔다. 미성년자 ㄷ씨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고액의 이자와 대출 원금을 받아 부동산·주식 등을 샀다. 국세청은 ㄷ씨의 아버지가 자기 소유의 회사에 개인 돈을 빌려주고, 법인 장부상 채권자로 아들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사를 경영하는 ㄹ씨는 가짜 세금 계산서 및 인건비 등 이용해 회삿돈을 빼돌렸다. 이렇게 빼돌린 돈은 임직원과 친인척 명의 차명계좌에 쪼개서 보유하며 채권·회사채 등 금융 상품에 투자하고 일부는 자녀에게 증여해 부동산 구매에 사용토록 했다.
국세청은 “경제 위기를 고려해 세무 조사를 최소한으로 운영하되, 고액 자산가의 지능적·불공정 탈세에는 더 엄정하게 대응할 계획”이라며 “특히 국내뿐 아니라 해외를 드나들며 교묘하게 부를 대물림하거나 기업 운영 과정에서의 사익 편취, 지능적 탈세를 지속해서 검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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