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는 12일(현지시각)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국제 경제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물가·통화긴축 등으로 세계 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지며 주요국들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중국의 대립 등 지정학적 갈등이 갈수록 심해지며 협력보다 ‘각자도생’을 택하리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달 12∼13일 미국 워싱턴디시(DC)에서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린다. 미국·중국·일본·독일·러시아 등 주요국 경제인사들이 다음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제 분야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회동이 주목받는 건 세계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에너지·식량난으로 뛰는 물가를 잡으려 미국 등 각국이 큰 폭의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며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2일 재무장관회의의 첫 논의 주제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급망 혼란과 통화긴축으로 경기둔화 우려가 큰 만큼 회원국들이 공동 대응 방안을 찾아보자는 거다.
문제는 회원국들 간 합의가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인 올해 4월과 7월 열린 제2차·3차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회원국들의 공동 선언문(코뮤니케)이 아예 나오지 않았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과 러시아 간 갈등으로 합의문 채택이 불발된 것이다. 지난 4월 회의에서는 러시아 쪽이 발언을 시작하자 미국·영국·유럽연합 장관들이 항의의 의미로 회의장에서 퇴장하는 ‘보이콧’ 사태도 벌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 때는 국제 공조의 기반이 약해져도 합의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없었다”며 “논의에 진전이 없을 경우 합의문이 채택되지 않을 순 있지만, 최근과 같이 계속해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건 국제 공조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라고 귀띔했다.
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와 함께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자문 기구인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역시 마찬가지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기금의 24개 이사국 대표들이 참여하는 이 회의도 지난 4월 공동 선언문 채택이 무산돼 의장 성명서를 대신 발표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주요 20개국 재무장관회의와 국제통화금융위원회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도 합의문 채택이 불발되면 경제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국제 공조 체제에 금이 갔다는 신호탄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의사 결정을 주도한 주요 20개국 협력체에 균열이 커지며 각국이 스스로 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1997년 발생한 아시아 경제 위기를 계기로 1999년 출범했다. 그 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세계 경제로 번지며 그해 미국 워싱턴디시에서 거시 경제 정책 공조 등을 위한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최초로 열렸다. 위기 때마다 ‘해결사’를 자처했던 국제 협력 체제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정부 관계자는 “서방 진영과 러시아의 공방이 갈수록 심해져 이번엔 합의문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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