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모습.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의 원인이 ‘플랫폼 독과점’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거대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자율규제’로 개선하겠다는 기존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번 사태에 따른 대응책을 대통령실에 보고했지만, 이미 추진 중이던 과제 외에 새로운 대책은 없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가 적절하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카카오는) 경쟁 압력이 적은 독과점 상태에서 리스크 관리가 잘 안 됐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의 내용을 포함하는 자율규제 논의가 시작됐고 온플법 내용을 넘어선 수수료 관련 이야기까지 포괄하고 있다. 자율규제는 성과를 지켜봐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카카오 사태 발생 직후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 구조”를 꼬집으며 국가 개입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실제 정책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공정위가 발표한 카카오 사태 대응방안도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날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카카오 사태에 따른 온라인플랫폼 독과점 문제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플랫폼 시장의 공정한 경쟁기반 확보 대책을 마련했다”며, 대통령실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자료에 담긴 대책은 이번 카카오 사태와 무관하게 앞서 문재인 정부 때부터 추진되어온 기존 과제들뿐이었다.
이날 자료에서 공정위는 플랫폼 독과점 금지행위 심사지침(예규)을 올 연말까지 제정해 플랫폼 산업의 시장지배력 평가 기준 등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전임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해 이미 지난 1월 행정예고까지 마쳤음에도 새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 탓에 동력을 잃었던 과제였다. 두번째로는 플랫폼 기업의 인수합병을 겨냥한 기업결합 심사기준(고시) 개정 과제도 제시됐는데, 이 역시 지난해부터 공정위가 준비해온 사안이다. 지난 3월 관련 연구용역을 처음 발주했는데, 유찰과 재공고를 거쳐 지난 7월에야 연구가 시작된 바 있다.
심지어 이는 법률 제·개정이 아닌 예규와 고시를 새로 만들고 고치는 수준이라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기준 개정을 통해 “간이심사로 처리되던 플랫폼 기업의 이종 혼합형 기업결합을 원칙적 ‘일반심사’로 전환할 예정”이라 밝혔지만,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신생 업체들을 대거 흡수하는 ‘킬러 인수’를 막을 수는 없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합병 대상 2개 회사 가운데 한쪽의 자산총액 또는 매출이 3천억원 이상이고, 다른 한쪽의 자산 또는 매출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만 결합심사를 받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경쟁 제한성이 거의 없다고 추정되면 신고 내용의 사실 여부만 확인하는 간이심사를 받는다.
카카오는 스타트업 수준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기업결합이 신고 대상조차 아니었고, 소수의 신고 대상 인수합병마저 대부분 간이심사에 그쳤다.
서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공정위는 규제 대상 기준과 규제 행위의 범위를 법률이 아닌 예규와 고시로 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럴 경우 제대로 된 제재를 가하기 어렵고, 한다 해도 번번이 법원의 판단을 구하게 될 것”이라며 “모호하고 새로운 내용이 많은 플랫폼 규제는 법률로 규정해야 그 제재가 실효성도 갖추고 규제 대상에게도 명확성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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