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령 농촌경제연구원 균형발전연구단장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프랑스 ‘지역결속국가청’ 방문 성과에 관해 인터뷰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프랑스는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상황이 한국보다 양호한데도 대통령, 총리, 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범정부 차원의 공동위원회에서 지역·농촌 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결정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농촌경제 및 도시계획 전문가인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균형발전연구단장은 10월 초 프랑스의 지역발전 정책 추진 기구인 ‘지역결속국가청’(ANCT)을 방문한 성과를 얘기하면서, 연신 “부러웠다”는 말을 했다. 이번 방문은 균형발전을 위한 농촌발전 정책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중앙집권국가로 불리는 프랑스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하면서 균형발전 모범국으로도 꼽힌다.
역대 한국 정부는 균형발전과 농촌소멸 극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도권 인구는 2019년 50%를 넘었고, 지방의 청년 유출도 2020년에만 9만1천명에 달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 주민 감소로 소멸위험이 있는 곳이 절반에 육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6대 국정목표의 하나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기존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자치분권위원회와 통합해서 지방시대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부터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 유턴기업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 등으로 오히려 균형발전에 역행한다는 반발을 낳고 있다.
송 단장은 문재인·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균형발전위원회 민간위원을 맡은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농촌경제연구원에서 부원장, 농업관측본부장,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서 인터뷰를 했고, 20일 전화로 추가 취재했다.
―프랑스 지역결속국가청은 어떤 기관인가?
“2020년 1월에 국토평등위원회(CGET), 산업·수공업 지역 정비 및 재구조화 공공기관(EPARECA), 디지털 기구 등 3개 기관이 통합해서 출범했다. 지역 및 농촌, 도시, 디지털 정책을 합친 것이다. 프랑스의 기초자치단체인 코뮌은 3만6천개에 달한다. 주로 코뮌 협력체를 중심으로 지역·농촌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지역결속국가청이 자문과 지원을 한다.”
―재정 지원을 하는 것인가?
“재정·기술·역량 측면을 모두 망라한다. 각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중앙정부의 각종 지원을 연결하는 단일 창구이다. 지자체가 발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여러 부처와 관련되지 않겠나. 이것을 연결해서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지역결속국가청의 지원에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세가지 원칙이 강조된다. 첫번째가 ‘지역의 이니셔티브(주도)’이다. 중앙정부가 지역에 지침을 주어서 따라오게 하는 컨트롤 방식이 아니라 동행·동반한다. 지역마다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부가 당연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프랑스는 다른 것 같다.
“그렇다. 우리는 중앙정부가 설계하고 돈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다. 얼마를, 어디에, 어떻게 쓰라고 지시하는, 철저한 상명하달식이다. 프랑스는 지역마다 사람·기술·재정 여건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부는 거기에 맞춰서 섬세하게 지원한다. 우리도 중앙이 지방을 컨트롤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원군이나 동반자 역할을 해야 한다.”
―두번째, 세번째 지원 원칙은?
“그들은 ‘앵제니리 지원’이라는 용어를 쓴다. 영어로는 ‘엔지니어링’인데, 단순히 프로젝트를 공학적으로 설계하고 구조화하는 게 아니다. 기술적·재정적·인적 지원을 모두 아울러 자문·연결·조정 역할을 한다. 세번째는 디지털 접근이다. 모든 지역 개발에서 디지털 접근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지역결속국가청의 정책 기능은 어떤가?
“중앙정부가 단독으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지자체의 요구를 받아서 한다.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 총리, 관련 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범정부 차원의 ‘농촌을 위한 부처 공동위원회’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위원회에서 ‘중심도시 실행’, ‘내일의 소도시 만들기’, ‘새 장소, 새 연결’, ‘서비스 프랑스’ 등 181개 농촌 의제를 선정했다. 대통령이 승인하면, 각 부처가 나눠서 추진하고, 총리가 6개월마다 체크한다.”
―지역결속국가청은 지자체들과 어떻게 협력하는가?
“지역 발전을 위한 농촌협약 등 기존의 협약들을 경제회생 및 생태전환 협약으로 통합 전환하고 있다. 기존 협약은 지역 개발과 정비가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협약은 경제·보건의료·교육·문화·스포츠 등 삶의 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적 계획을 강조한다. 또 국가와 지자체 중심에서 기업, 협회 등 다양한 민간부문이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계약하고 재정을 푸는 것만으로는 발전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지역결속국가청의 추천으로 우리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드프랑스의 코뮌에 있는 ‘제3의 공간’ 프로젝트 현장을 다녀왔다는데, 어떤 곳인가?
“미국의 사회학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제3의 공간을 ‘집도 아니고 회사도 아니지만 편하게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정의했다. 제3의 공간은 15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지역 특성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어서 비즈니스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양봉업자와 마케팅업자가 만나 꿀을 만들어서 좀 더 효과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놀이를 하거나, 공공에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공급하는 형태도 있다. 방문했던 곳은 지역의 기업과 예술가들의 사무실, 주민 회의실, 요가실습장 등 여러 공간이 섞여 있었다. 전국적으로 2500~3000개 정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의 에손 데파르트망에 속한 고메스라빌 코뮌에 있는 ‘제3의 공간’. 지난 3일 송미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균형발전연구단장(가운데)이 제3의 공간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제공
―우리가 균형발전위를 만든 것은 지역 불균형과 농촌소멸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어떤 상황인가?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기준 1.7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위다. 한국은 지난해 0.84명으로 거의 꼴찌 수준인 38위이다. 프랑스의 고령화율(전체 인구에서 65살 이상 노인 비율)은 2020년 20%를 넘었다. 한국은 2020년 기준 15.7%로, 프랑스보다 낮지만 고령화 추세는 훨씬 가파르다. 프랑스가 고령화사회(노인 비율 7% 이상)에서 고령사회(노인 비율 14% 이상)까지 가는 데 115년이 걸렸는데, 한국은 18년 만에 도달했다. 한국은 국토의 12%인 수도권에 인구의 50% 이상이 산다. 반면 프랑스는 수도권인 일드프랑스에 18%가 산다.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상황이 모두 우리보다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도 지역결속국가청 안에 대통령, 총리, 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위원회를 만들어서 지역과 농촌 정책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의제를 관리하는 게 놀랍고 인상적이다.”
―대통령까지 참여하는 공동위원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나?
“지방과 농촌 위기는 매우 복합적이어서, 단일 부처의 힘이나 정책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프랑스는 장기간 지속해서 여러 부처의 통합적인 자원 투입과 협력, 범정부 차원의 정책 조율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결속국가청 안에 각 부처 담당자가 있어 관련 정책과 사업을 챙긴다. 여건이 불리한 지방일수록 각각의 특수성을 고려한 더욱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 부러운 일이다.”
―프랑스의 지역결속국가청과 우리의 국가균형발전위를 비교하면 어떤 차이가 있나?
“지역결속국가청은 정책도 결정하지만 지원·실행기구에 가깝다. 반면 균형발전위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지역 균형발전과 농촌발전을 위해 부처들의 정책을 조정하는 위치에 있지만, 직접 사업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균형발전위는 장기적인 방향과 목표를 가지고 지속해서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지만, 각 부처에서 하는 일을 모아놓는 수준이라고 봐야 한다.”
―신설되는 지방시대위와 관련해서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자문기구에서 벗어나 부총리급 행정기구로 전환해서 실행력을 갖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위원회가 독자성을 가지고 모든 부처를 아우르면서 실질적인 실행력을 갖고 지방과 동행하는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컨트롤타워 기능에 너무 연연하는 것 같다.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얘기하면서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중앙 중심적으로 본다.”
―지방 주민의 입장에서 균형발전 정책의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면?
“그동안은 목표를 인구, 일자리, 산업 같은 숫자로 제시하다 보니 ‘거점 만들기’가 중심이 됐다. 농촌 주민 입장에서 보면 그런 것들은 삶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또 인구가 줄어드는 곳, 일자리가 줄어드는 곳은 계속 사각지대로 남는다. 균형발전은 이런 부분을 배려해서 대한민국 국민이 서울에 있으나 울릉도에 있으나 누리며 살아야 할 최소 수준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중심이 아니라 기업, 민간 활동가, 전문가, 지역 조직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하는 균형발전이 되어야 한다. 또 지방의 정주인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교류인구와 관계인구를 바라봐야 한다.”
―균형발전위가 설립된 지 20년도 안 됐는데, 정권 교체기를 맞아 명칭이 바뀌는 게 벌써 세번째다.
“정부마다 정책의 강조점이 다를 수 있어 명칭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균형발전위의 구성이다. 지금은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과 일부 계약직으로 구성돼 있다. 공무원들은 1∼2년 일하다가 부처로 돌아가기 때문에 친정의 이해가 강하게 작용한다. 또 자문만 하고 직접 실행은 안 하기 때문에 각 부처에 요청하는 입장이어서 주도하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실행하는 하부조직도 없다.”
―균형발전과 농촌발전은 정책의 일관성이 매우 중요한데.
“그렇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는 문제이다. 또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이다.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어느 한 부문이나 한 정책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여러 부문의 정책이 통합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사례가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 때 농촌신활력사업을 했다. 3년씩 연장해서 최장 9년 동안 지역의 자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하고, 70개 낙후지역을 선정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지역발전위원회로 바뀌면서 사업이 6년 만에 중단됐다. 기관 이름이 바뀌더라도 지역과 약속한 장기 프로젝트는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균형발전과 지역 간 불평등 해소를 국정목표로 제시한 최초의 정부이다. 2022년까지 지역 인구 비중 50% 이상, 지역 일자리 비중 50% 이상, 재임 5년간 농어촌 순유입 10% 이상 증가 등 세가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모두 달성을 못 했다. 또 혁신도시 추가 지정과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도 약속했지만, 혁신도시는 지정하는 데서 그치고, 공공기관 이전은 시작도 못 했다.”
―국토 불균형 발전과 지방소멸이 큰 국가적 위기라고 하면서 정작 역대 정부는 해당 분야와 관련이 없는 비전문가를 균형발전위원장으로 임명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균형발전위의 수장이 누군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균형발전위를 만들었을 때는 예산도 없고 실행력도 없는 조직이었지만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크다 보니 힘이 실렸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민수빈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