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소유를 제한하는 금산분리 제도를 완화하기로 한 가운데, 금융회사의 비금융 자회사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비금융업무로의 진출을 전면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까지 검토하고 있다.
15일 금융위원회는 전날 제4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금융회사가 비금융업무로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세부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혔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의 금융회사 소유를 막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금지’가 중요한 규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에 금융위는 해당 규제는 그대로 두되, 반대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소유하는 규제는 다소 풀어주기로 한 상태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자회사 출자 범위나 부수 업무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금융업법에 따라 고유업무와 부수 업무를 할 수 있는데, 부수 업무는 현재 은행 업무와 관련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관련 없는 경우 케이비(KB) 국민은행 알뜰폰 판매 사업(‘리브엠’)이나 신한은행의 배달앱 서비스(‘땡겨요’)처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아야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은 별도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없이 업무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은행이 비금융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15% 넘게 가질 수 없는 현행 규제도 완화돼 비금융회사 지분을 100%까지 가질 수 있게 된다.
금융위는 비금융업무 범위를 규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능한 자회사 출자 범위와 부수 업무를 추가로 나열하거나(포지티브 방식), 건설이나 제조업 등 일부 불가능한 업무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전면 허용하는 방식(네거티브 방식) 등을 선택지에 올리고 장·단점을 따지는 중이다. 규제 완화 폭이 더 넓은 네거티브 방식이 도입되면, 금융당국은 위험 총량 한도를 설정해 리스크를 관리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금융위의 규제 완화가 금산분리 원칙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번 빗장이 풀리면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금지까지도 규제 완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의 자금 지원에 동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비금융업으로의 무한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은행법이나 보험업법에 동일인 신용공여 한도 규정이 있어 특정 회사에 대한 과도한 자금 지원이 금지돼있고, 네거티브 방식으로 제도가 바뀐다 해도 자회사 출자 한도와 비슷하게 위험 총량을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구조적인 규제(금산분리)는 풀어주고 개별 행위를 규제하겠다는 건데, 행위 규제는 금융회사가 발전된 금융테크닉을 가지고 얼마든지 회피 수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업무 위탁 체계를 정비하고 위탁 가능한 업무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업무위탁은 은행이 하고 있는 업무 일부를 빼내서 제3의 기관에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업권별로 업무위탁과 관련된 근거 규정이 다르다. 은행 등에 적용되는 금융위 감독규정(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은 대출과 같은 본질적 업무는 원칙적으로 위탁할 수 없게 돼있고, 자본시장법은 본질적 업무도 위탁할 수 있게 돼 있다.
금융위는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권, 핀테크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 초 금융규제혁신회의에 구체적인 방안을 상정해 심의한다는 계획이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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