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울산광역시 중구 화합로 신울산슈가케익제빵학원에서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출신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진로체험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제과기능사자격과정에서 정윤정 강사(가운데)의 지도를 받아 학생들이 과자 원료를 반죽하고 있다. 울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13일 오후 7시 울산광역시 중구 화합로 신울산슈가케익제빵학원. 6명의 중·고등 학생들이 과자 원료를 반죽한 뒤 틀에 부어 모양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울산 중구 청소년진로직업체험센터가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제과제빵기능사자격과정 교육 현장이다.
고교 1학년인 이본(17·가명)은 제과제빵기능사가 되는 게 꿈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에 다닐 엄두를 못 내다가, 배움의 기회가 열리자 용기를 냈다. 교육을 받은지 불과 두달 만에 제빵 및 제과 기능사 두 분야의 필기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그것도 첫 번째 도전에서 모두 성공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만간 실기시험에 합격하면 정식 기능사 자격을 따게 된다. 지도를 맡은 정윤정(31) 강사는 “국가공인자격증 취득은 어른들도 어려운데, 큰일을 했다”고 제자를 칭찬했다.
학생들의 숨은 잠재력을 깨워주는 제과제빵기능사자격과정은 청소년진로직업체험센터가 어려운 청소년을 위해 올해부터 시작한 진로체험교육 ‘청소년, 마을 속에서 꿈을 꾸다’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의 초·중·고교 학생과 특수학교 학생, 학교 밖 청소년 기관의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직업체험교육은 크게 네가지 방식이다. 첫번째 사람 중심의 ‘피플이 그린 꿈’은 청소년을 위해 진로탐색과 역량을 검사한다. 1대1 상담과 검사를 통해 청소년의 특성·적성·흥미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로 상담을 한다. 두 번째 장소 중심의 ‘플레이스로 그린 꿈’은 다양한 주제의 단기 직업체험교육을 제공한다. 동물매개치료, 은공예, 커피 바리스타, 목공예, 향수, 디자인, 제빵 등 9개 주제 중에서 희망하는 프로그램을 한차례씩 체험할 수 있다.
세 번째 ‘프로그램과 함께 그린 꿈’은 실제 창업가의 멘토링을 받으며 실무체험을 통해 창업을 경험한다. 반려동물관리사, 아로마테라피스트, 제과제빵사, 토탈공예가, 보드게임지도사 등 12개 주제별로 평균 3개월씩 장기교육을 한다. 네 번째는 코로나 확산에 따라 동영상 등을 활용한 ‘비대면’ 진로체험이다. 울산지역 내 특화산업과 직업인 인터뷰를 담은 영상을 제작해 활용한다.
직업체험교육은 울산지역 내 전문 직업인의 청소년 체험장을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신울산슈가케익제빵학원이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취지에 공감해서 제과제빵기능사 교육을 맡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을교육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구상이다. 일반 학생들도 학교의 예산 지원을 받으면 참여할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올해 2월부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누적 기준 3천여명이 참여하는 큰 성과로 이어졌다. 관내 참여 초·중·고등학교도 30여개에 달한다.
‘청소년, 마을 속에서 꿈을 꾸다’ 사업은 코로나 사태 이후 울산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격차 실태조사가 계기가 됐다. 청소년은 사는 환경이나 지역에 따라 다양한 교육격차를 가진다. 이는 청소년이 갖는 꿈의 종류와 크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울산중구 청소년진로체험센터의 프로그램 담당자인 박민주(24)씨는 “교육기회에서 배제된 지역 청소년들이 8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체험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교육은 적지 않다. 하지만 개인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교육방식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기존 직업에 대한 설명 위주이고, 실습도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단기 이벤트 성격이 강하다.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진로체험교육은 ‘맞춤형’이라는 게 큰 특징이다. 사전조사를 통해 청소년의 니즈(욕구)와 특성을 파악하고, 청소년의 수준과 학습 속도에 맞춰 필요한 교육을 제공한다. 박민주 프로그램 담당자는 “청소년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진로체험교육은 국내 최초”라며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청소년도 특성에 따라 세분화해서 교육한다”고 강조했다. 소외 및 교육 취약계층 청소년과 특수학생을 위한 진로교육 업무 매뉴얼도 국내 처음으로 제작할 계획이다.
맞춤형 진로체험교육은 청소년들의 이해도와 참여도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받는 진로교육에 비해 학생 수가 많지 않고 1대1 설명이 이뤄지다보니 집중도 잘된다고 긍정적이다. 제과제빵기능사자격과정에 참여 중인 중학교 1학년 김미경(14·가명)은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여러 꿈이 있었지만 한동안 의욕을 잃고 있었다”면서 “이제는 미래 직업에 대한 꿈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웃음지었다. 정윤정 강사는 “햑생들의 자존감이 높아지고 수업에도 큰 열의를 보인다”면서 “아이들이 많이 변하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울산중구 청소년진로직업체험센터는 2014년 문을 연 뒤 미래사회의 주역인 청소년들의 진로와 직업 준비를 도와주는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청소년, 마을 속에서 꿈을 꾸다’ 프로그램은 2021년 말 사랑의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삼성전자가 함께 지원하는 사회복지 공모사업 ‘2022 나눔과 꿈’에 선정된 것이 계기가 됐다.
청소년 직업체험교육은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청소년이 존재하는 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사랑의열매 지원기간은 3년이어서, 교육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과제이다. ‘한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교육 슬로건을 내건 울산교육청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사랑의열매도 사업의 중요성과 국내 첫 시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어, 추가지원 가능성도 열려 있다. 소외 및 교육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지원은 사회 전체의 과제라는 점에서 민간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의 직접 지원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겨레>·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기획
울산/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