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이 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 중 하나인 지원센터는 오세훈 시장이 위탁운영기관을 교체하고 예산과 조직을 줄이면서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정부처럼 시민사회단체를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으로 탄압하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이후 처음입니다.”
이승훈(48)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비영리 민간단체가 국고보조금을 부정 사용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조사도 하기 전에 시민사회단체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보조금 투명성 제고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이 비영리 민간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사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가운데 감사원, 중앙부처, 국민의힘 출신이 단체장을 맡은 광역시도를 중심으로 시민단체를 겨냥한 감사와 지원 축소 등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16대 총선 때 낙천낙선운동을 발판으로 2001년에 출범한 국내 최대 시민단체 연대기구로, 현재 351개 단체가 함께 하고 있다.
이승훈 사무처장은 “‘87 체제’(6월 민주항쟁을 통해 형성된 한국 민주주의체제 ) 이후 시민사회운동은 민주화나 통일 같은 큰 담론 중심에서 벗어나 환경운동 등 시민편익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됐다”면서 호주제 폐지, 대형할인마트 비닐봉지 안쓰기, 쓰레기 종량제, 촌지 근절, 주5일 근무제, 공직자 인사청문회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그는 “시민사회는 공기와 같아 시민사회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면서 “정부가 시민사회를 적대시할 게 아니라 협력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훈 사무처장과의 인터뷰는 4일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서울시엔피오(NPO)지원센터에서 가졌고, 12일과 13일 전화통화를 통한 추가취재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비영리 민간단체 국고보조금에 대한 관리 강화를 지시하고, 대통령실은 일부 보조금이 부적절하게 사용된 사례를 공개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인데.
“7년간 31조원을 지원했다는데 구체적인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면 조사할 수 있다. 그런데 조사도 하기 전에 시민단체들이 마치 이권 카르텔을 형성해서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부도덕한 행동을 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공익적 사명감과 신념으로 묵묵히 헌신하는 수많은 활동가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
―보조금 부정사용 사례에는 세월호 피해지원금이 김일성 항일투쟁 세미나 등에 사용됐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특별법은 피해지역의 공동체 회복을 목적으로 제정됐다. 유가족은 물론 전체 안산 시민을 광의의 피해자로 보고 지원 대상으로 삼았다. 김일성 항일투쟁은 지역청년단체가 개최한 인권·평화·통일 주제 세미나에 일부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통일에 관심있는 청년들이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를 종북, 주체사상 세미나라고 과장·왜곡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감사원이 1764곳의 시민단체를 상대로 보조금 특별감사를 하는 것 외에도 윤석열 정부의 압박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데.
“서울·부산·대전·충남·충북 등 국힘 출신이 단체장을 맡은 광역시도는 회원 내역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세청 등은 후원자에게 전화해서 기부금 공제 관련 증빙자료를 요구한다. 후원자 중에는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시민사회 지원 축소도 심각하다는데?
“문재인 정부는 ‘시민사회 활성화와 공익활동 증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만들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그에 근거해서 조례를 제정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런데 윤 정부가 지난해 이를 폐지했다. 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서울시엔피오지원센터처럼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중요한데 관련 예산을 깎고, 근거 조례를 없애고, 조직을 줄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단체에 지원금을 주지 않기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적이 있지만, 현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2021년 기자회견에서 서울시 곳간이 시민단체 전용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전락했다고 비난했는데.
“서울시에 발표내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거부된 게 많다. 일부 받은 자료만 놓고 보면, 시민단체로 볼 수 없는 곳들도 많이 포함됐다. 또 지원금을 얼마나 썼느냐보다, 어디에 썼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원금을 필요한 곳에 제대로 썼다면 추가로 더 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구체적인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오 시장은 변호사 시절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다. 나름 시민단체의 사정을 잘 알텐데, 이처럼 부정적인 이유는?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할 때 시민단체와 대립했다. 결국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시장직을 내려놓았다. 2016년 총선 때는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정세균 의원에게 패했는데, 당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대상자에 포함되어 피해를 많이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민사회를 흔들어 보수의 아이콘이 되면 정치적 입지에도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겉으로는 시민단체의 회계 투명성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적대시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운동은 민주주의나 통일 같은 큰 담론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열사도 나왔다. 그런데 ‘87 체제’ 이후 시민운동은 양상이 많이 다르다. 정치적 민주주의 영역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환경운동 등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법과 제도, 정책 변화를 통해 시민의 편익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통령 수석실 이슈리포트를 보면, 민주노총이 군사훈련을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윤 정부의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 수준이 1980년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시민사회는 민주화, 인권보호 등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구체적 사례를 꼽는다면?
“한국사회의 중요한 변화에는 대부분 시민단체가 큰 역할을 했다. 가부장적 문화의 유산인 호주제 폐지는 여성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노력의 결과이다. 반달가슴곰 복원, 대형할인마트 비닐봉지 안쓰기, 쓰레기 종량제, 촌지 근절, 서울 광화문 횡단보도 설치, 주5일 근무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도 시민단체의 요구에서 출발했다. 실제 성과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시민사회가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사회를 상상하기 힘든 것 같다. 시민사회는 사회갈등 완화, 국가·기업에 대한 감시 견제, 정부와 시장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런 점에서 시민사회에 대한 탄압이 심각성을 더할 것 같은데?
“시민사회는 공기와 같다. 인간이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시민사회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발전할 수 없다. 시민사회가 위축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시민사회를 적대시할 게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주요 동력으로 보고 협력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거꾸로 간다.”
―정부가 시민사회를 적대시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민단체의 미션은 시민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다. 이는 역으로 보면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득권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 권력은 오랫동안 유착관계를 이뤄왔다. 윤 정부가 시민사회를 공격해야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고,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시민단체의 친진보 내지 친민주 성향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런 것도 같은데, 정부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단체는 대부분 이념적 지향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 곳들이다.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자원봉사단체가 대표적이다. 성평등과 아이들 보육에 관심이 큰 ‘정치하는 엄마들’, 취업준비생에 면접용 정장을 빌려주는 시민단체, 포장재 없이 제품만 구매하는 알맹상점이 무슨 정치적 성향을 갖겠나? 참여연대, 경실련 같은 전통적 의미의 시민단체들은 정부 지원금을 일절 받지 않는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대체로 단체의 임원급 이상은 정당 가입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의 임원이라고 해서 표현이나 결사의 자유를 제한받아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미국, 독일에서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선거 때에는 후보를 돕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돌아와서 활동한다. 또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관련 의제를 다뤄온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시민단체가 등록된 정부기관의 책임자에 해당 시민단체 출신이 임명될 경우 이해충돌 위험성이 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사례를 꼽는다면?
“경실련을 예로 들면, 윤미향 사건 때는 의혹을 소명하고, 잘못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조국사태 때는 대통령 최측근이 법무장관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니 자진사퇴하라고 했고, 대장동사건과 관련해서는 개발이익 중에서 공공환수가 10%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노동정책 후퇴, 재벌개혁 미흡 등도 강하게 비판했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윤미향 사건에서 정부보조금 부정 수령과 후원금 사적유용 논란이 제기되면서 시민단체의 회계투명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현재 사정은 어떤가?
“시민사회 스스로 회계를 투명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회계 교육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의 소규모 단체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지자체가 회계관리 교육을 지원하면 좋을 것 같다.”
―시민단체의 독립성을 위해 정부 지원을 아예 안 받거나 제한할 필요성은 없나? 경실련과 참여연대 사례도 소개했지만, 그린피스도 정부나 기업 지원을 안 받는다고 한다.
“요즘에는 정부나 지자체가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인데 자체 힘으로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한다. 시민단체가 정책을 제안해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도 있다. 두 경우 모두 시민단체가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되어야 한다. 요즘에는 시민단체의 통장에 바로 보조금이 꽂히는 일은 없다.”
―지원 대상 선정 과정의 투명성 문제도 제기된다.
“지원 사업을 선정할 때 심사 대상 시민단체 출신의 심사위원은 아예 제외시킨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시민사회를 부정하는 것은 국제 추세에 절대 맞지 않다.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안 된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된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등에는 시민사회의 노력이 많이 들어가 있다. 시민사회는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국제 연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 대기업도 시민단체를 많이 찾는다. 시장이 시민사회의 역할을 인정하는데, 정부가 부정하고 밟아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민수빈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