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전지 제조설비 회사 에스제이이노테크 대구 본사 사업장 전경. 에스제이이노테크 제공
태양광전지 제조설비 업체 에스제이이노테크가 한화그룹 계열사를 상대로 한 기술침해(탈취·유용 등)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든 것은 소송 제기 3년 만인 2021년 12월이었다. 한화 쪽이 ‘기술유용’에 따른 에스제이이노테크 쪽 피해액(5억원)의 2배를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한화 쪽은 하도급 계약을 맺은 에스제이이노테크로부터 태양광전지 생산설비 중 하나인 스크린프린터 핵심 기술 자료를 제공받은 뒤 자체 개발·출시에 나섰고,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기술 유용(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판단했다. 소송 당사자는 하도급 계약을 맺은 (주)한화였다.
이 소송 건은 양쪽 모두의 상고에 따라 대법원 판결을 앞둔 미결 상태이긴 해도 기술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적용된 첫 사례로 기록돼 있다. 기술침해에 대해 기초 손배액의 최대 3배까지 물어내도록 하는 징벌적 장치를 2011년 하도급법에 처음 도입한 지 꼭 10년 만이었다.
에스제이이노테크 사건을 2심부터 맡아 1심 패소(2020년 8월) 판결을 일부 승소로 뒤집는 성과를 끌어낸 박희경 변호사는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는 상생협력법(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에 관한 법)에도 도입돼 있지만 (대법 판결로) 확정된 사례는 아직 전무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하도급법에 이어 특허법(2019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2021년), 상생협력법(2022년)에 잇따라 채택된 기술침해 관련 징벌적 손배제가 거의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에스제이이노테크 건은 ‘징벌적 손배제의 성과’라기보다는 ‘중소기업 기술침해 구제의 난점’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새해 들어 중기 기술탈취 논란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행보를 보인데 이어, 최대 3배로 돼 있는 기술유용 관련 징벌적 손배제의 기준(배수)을 높이는 쪽으로 상생협력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기술 탈취 문제 위주로 중소기업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에 나서고 있는 재단법인 경청의 박성수 팀장은 기술 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 적용 사례가 드물다는 문제 제기에 더해 “피해 인정액이 적어 3배로 배상액을 결정하더라도 실질적인 피해 구제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이 있다”고 짚으며, 이 대목을 더 원천적인 한계로 꼽았다. 에스제이이노테크 건만 해도 피해자 쪽의 애초 청구액은 100억원이었다.
박 팀장은 이어 “기술 가치 산정이 어렵고, 산정을 위한 기반이 마련돼 있지 않은 터에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수익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기술배심제 도입”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기술 전문가들로 꾸려진 배심원단을 통해 중기 기술에 대해 합리적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법원의 판단에서 생겨날 결함을 메우자는 제안이다.
여기에 덧붙여 징벌적 손배제의 배수를 더 높여야 한다는 제안은 중기부 외에 국회 쪽에서도 제기돼 이미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하도급법 개정안이다. 기술유용에 대해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희경 변호사는 “징벌적 손배액이 최대 3배로 돼 있으니 마치 ‘법정 최고형’처럼 여겨져 그 수준까지 높여 결정하는 데 법관 쪽에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기준의 상향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재훈 중기부 기술보호과장은 “징벌적 손배제의 실효성 논란에도 배수 기준을 높여 중기 기술보호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징벌적 손배제 강화 외에도 중기 기술보호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기부가 지난해 3~4월 3400개 기업(중소 3200개, 중견 100개, 대기업 100개)을 대상으로 기술보호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를 보면, 2021년 기준 기술유출 피해 경험률은 0.6%였다. 2020년 기준 조사 때(1.7%)보다 낮아졌지만, 평균 피해 금액은 5억8천만원에서 12억8천만원으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부 관계자는 “대기업 눈치 보느라 솔직한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며 “기술의 해외 유출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더라도 실제 피해는 더 광범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