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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전 적자에 산은 휘청…공기업 주식으로 ‘땜질’하는 정부

등록 2023-03-07 16:33수정 2023-03-08 02:49

산은 등 국책은행에 대규모 공기업 주식 수혈
건전성지표 개선되지만 현금 지원없는 맹탕
국회 심사 우회…전기요금 대책 등 정공법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기자단
정부가 산업은행에 수천억원 규모의 공기업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식을 추가로 투입한다. 산은 자회사인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적자로 산은 건전성에도 비상등이 켜지자 자본 수혈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 정부의 산은 직접 출자 같은 정공법이 아닌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 주식가치 평가를 위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이달에 정부가 보유 중인 엘에이치 주식을 두 은행에 현물로 출자하기로 해서다. 은행이 발행하는 신주를 정부가 인수하고, 그 대가로 현금 대신 엘에이치 주식을 건네는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에도 산업은행에 엘에이치 주식 5650억원어치를 현물 출자했다. 한전이 지난해 연간 24조원대 적자를 내며 산은의 자본 적정성도 나빠져서다. 산은은 한전 지분 32.9%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자회사인 한전의 적자는 이 지분율 만큼 산은 손실액으로 잡힌다.

산은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총자본비율 기준)은 2021년 말 15.05%에서 지난해 9월 말 13.08%까지 하락한 상태다. 은행의 대출, 회사채 및 지분 투자액 등 위험 자산의 13%가량을 떼여도 자기 돈으로 메울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은 이 비율이 10.5% 밑으로 내려가면 배당 제한 등 조처를 한다. 산은의 자체 마지노선은 외국 신용평가사들이 적정 신용등급을 매기는 기준으로 삼는 13%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전 손실 1조원은 산은의 자기자본 비율을 0.06%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한전이 21조원 손실을 내면 산은의 자기자본 비율이 1.37%포인트 떨어져 대출 여력이 약 33조원 줄어든다”고 했다.

정부의 공기업 주식 현물 출자는 겉으로만 보면 꿩 먹고 알 먹기다. 정부가 보유한 엘에이치 지분이 은행 지분으로 바뀌는 것일 뿐이지만, 산은 자본 비율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정부 돈이 직접 들어가지 않는 까닭에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 국회의 공공요금 정책 질타를 피할 수 있는 우회로인 셈이다.

그러나 산은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다. 산은 재무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산은은 가계 대출 중심의 일반은행과 다르게 대출·투자 위험이 큰 어려운 기업을 주로 지원하는 만큼 경제가 어려울 때 자본 보강의 필요성이 크다”며, “현물 출자는 현금화가 어려운 정부 보유 주식을 은행으로 옮겨준 것뿐이어서 실질적인 실탄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엘에이치는 지난해 상반기 순이익(1조1279억원)이 1년 전보다 53% 급감한데다 부동산 경기 악화로 향후 주주 배당 여력이 불투명하다. 주요 자금 조달 수단인 산은의 채권(산업금융채권) 발행 규모도 지난해에만 약 60조9천억원에 이르며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산은·수은 등 국책은행이 공기업 주식을 정부와 공동 보유할 수 있는다는 법상 특례 조항을 이용해 은행 자본 확충이 필요할 때마다 관행적으로 공기업 주식을 출자해왔다. 국책은행이 여러 공기업 주식을 떠안으며 자회사인 공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옮아오는 부작용이 생겼다. 산은이 한전 최대 주주가 된 건 2001년이다. 산은이 한전 민영화를 지원하려고 한전에 18조7천억원 규모의 대출 보증을 서줬다가 정작 산은의 자본 건전성이 나빠지자 정부가 가진 한전 주식을 돌려막기식으로 출자 받아서다. 한전 실적이 좋을 땐 배당이 듬뿍 나오는 효자였지만 최근 사정이 180도로 바뀌며 산은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2016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국책은행 자본 위기가 불거졌을 때도 정부는 ‘한국형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은행의 대출 지원과 공기업 주식 현물 출자 카드를 꺼냈다. 이 대책을 주도한 기재부 1차관이 최상목 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이다. 하지만 국회 ‘패싱’ 논란이 일고 재정 역할론이 힘을 받으며 결국 정부 예산 1조원을 국책은행에 투입했다.

국회와 행정부를 두루 거친 한 경제전문가는 “문제의 근원인 한전 전기요금 문제 해결이나 산은 부실화 점검 없이 정부가 손쉬운 공기업 지분 출자로 넘어가려는 건 미봉책일 뿐”이라며 “관료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수습에만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의 엇박자도 엿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회의에서 바이오헬스를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우겠다며 “국책은행이 어그레시브(공격적으로)하게 금융 투자를 선도하라”고 지시한 게 대표적이다. 국책은행은 정책금융 실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데 대통령은 딴소리를 한 셈이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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