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재정 준칙 도입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채무 증가를 막을 재정 준칙 도입이 시급하다.”
“낡은 논리의 재탕이고 실효성도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 준칙’의 법제화를 놓고 여야, 학계가 찬반으로 갈려 맞붙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4일 재정 준칙 법제화 문제를 놓고 공청회를 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년간 국가채무가 416조원 늘었다”며 “개인과 가정도 소비, 지출액에 제한을 두는데 국가가 이런 것을 안 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반면 양기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정 건전성 유지 노력도 필요하지만,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분들을 위해서 재정을 더 풀어서 도와줘야 하지 않겠냐”라고 주장했다.
재정 준칙은 정부의 재정 운용을 통제하는 제도다. ‘건전 재정’을 강조하는 현 정부는 지난해 9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 및 국민연금·사학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뺀 재정수지) 적자의 연간 상한을 3%로 제한하고, 지디피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으면 상한을 2%로 낮추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상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나라치고 재정 준칙이 없는 나라가 한국 외에 별로 없다”며 “대부분 선진국이 재정 준칙과 함께 중기 재정 계획, 독립적 재정기구를 같이 운용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세계 105개국이 재정 준칙을 도입한 상태다. 대부분 한국 정부안과 비슷한 재정 수지, 채무 상한을 기준으로 두고 있다. 김 교수는 경기가 좋을 때 재정을 아끼고 불황에 돈을 풀 수 있는 재정 여력 비축 수단으로써 재정 준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명예교수도 “한국 재정의 암울한 전망을 감안할 때 재정 준칙 입법화는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재정의 효율적인 사용과 증세 논의를 본격화하고 대외 신뢰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정부 준칙안의 맹점을 지적했다. 일단 정부가 제시한 재정적자 상한 3%, 국가채무 비율 상한 60%는 유럽연합(EU)이 1990년대 당시 자기네 재정 상황에 맞춰 도입한 수치를 그대로 베낀 것으로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 역할론’이 힘을 받으며 각국도 기껏 도입한 재정 준칙을 어기기 일쑤이고 현재도 재검토 대상에 올라있다. 나 교수는 “유럽연합 재정 준칙의 약점이 역사적으로 충분히 노출됐고 이에 따라 대안적 논의들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인데도 굳이 고릿적 논리를 재탕하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꼬집었다.
경제 상황도 문제다. 최근 경기 악화로 재정 준칙이 유명무실해지거나 꼭 필요한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고정된 재정 적자 비율 기준에 얽매여 지출을 강제적으로 줄이면 경제에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정 준칙을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저출산·기후위기·불평등 극복 및 산업 전환 등을 위한 공공 투자는 준칙 적용을 제외하자는 게 나 교수의 제안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내놓은 재정 준칙은 경제적 실질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재정 수지 계산 때 지방정부 재정 등을 포함하고 발생주의(제품 인도 등 재무에 영향을 줄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수익·비용 인식) 회계 원칙을 적용하는 외국 대다수 국가들과 달리, 기획재정부는 중앙정부 재정에 현금주의(현금이 오간 시점에 수익·비용 인식) 기준을 적용한 준칙안을 마련한 게 특징이다. 이로 인해 기재부가 지출 시기 조정 등을 통해 임의로 재정 수지를 조정해 준칙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는 게 이 수석의 비판이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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