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여파를 주시하고 있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해 건전성 제도 정비에 나섰다.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 당국은 준비 과정을 거쳐 하반기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15일 열린 ‘제3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은행권의 손실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한 자본건전성 확충, 대손충당금 적립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고 16일 밝혔다. 회의를 주재하는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에 이어 시그니처 은행까지 폐쇄됐으나 우리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상황”이라면서도 “금융시장의 변동성과 불확실성 우려가 커진 만큼 금융권의 건전성 제고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고금리·고환율 등의 위기상황을 가정했을 때 은행 자본이 적정하게 유지되는지 점검하는 제도로, 금융당국은 주기적으로 은행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자본적정성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가 미흡해도 금융당국이 은행에 추가자본을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 구속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은행업 감독규정 등을 개정해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추가자본을 적립하게 하는 스트레스 완충자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경기대응 완충자본 제도’ 시행도 적극 검토한다. 경기대응 완충자본 제도는 신용 팽창기에 은행에 추가자본을 적립하도록 하고, 신용경색이 발생하면 자본적립 의무를 완화해 적립금을 사용하게 하는 제도다. 은행 자본건전성 규제인 바젤Ⅲ 자본규제의 일환으로 2016년 도입됐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로 적립수준이 0%로 유지돼왔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급증한 여신이 부실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올해 2~3분기 안으로 추가자본 적립의무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전염병이나 지정학적 리스크 등 예상치 못한 외부충격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해 상시적으로 자본 버퍼를 유지하는 방안 또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충당금 제도도 정비하고 있다.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요구권을 도입하기 위한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대손준비금은 감독규정상 최저적립률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경기변동을 선제적으로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은행별로 대손충당금 적립을 위한 예상손실 전망모형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도 구축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을 확충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손실흡수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대손충당금은 예상되는 손실에 대한 대응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리와 환율의 가파른 상승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의 지난해 9월 말 보통주자본비율은 12.26%로 규제비율(7~8%)을 상회하지만 채권평가 손실 등이 영향을 미쳐 2021년 말(12.99%) 대비 하락했다. 유럽연합(14.74%), 영국(15.65%), 미국(15.65%)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아울러 최근 대출금리가 상승하면서 가계부문을 중심으로 연체율이 점차 오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코로나19 금융 지원 정책에 따른 착시효과를 고려하면 실제 연체율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스트레스 완충자본·경기대응 완충자본 제도의 경우 세부 정비 방안을 구체화해 올해 하반기부터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15일 회의에서 이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가 국내 ‘스몰라이센스’, ‘특화은행’ 도입 논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태스크포스는) 금융안정과 소비자보호를 전제로 은행권 내 실질적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당초 계획대로 6월까지 개선방안을 마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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