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기업 등의 시설투자에 적용하는 세금 감면 비율을 현행보다 2배 가까이 높이는 ‘반도체 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22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 연간 조 단위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되는 삼성·에스케이(SK)·현대차·엘지(LG) 등 4대 그룹이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소수의 대기업에 세금 공제 혜택이 집중돼 형평성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어 세법상 ‘국가전략기술’의 범위를 확대하고 시설 투자 세액 공제율을 상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달 말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될 예정이다. 개정안을 보면 국가전략기술 분야 시설 투자에 적용하는 세액 공제율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기존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각각 올라간다. 국가전략기술도 기존 반도체·배터리(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 등 4개에서 수소와 미래형 이동 수단을 추가한 6개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국내 반도체 시설에 연간 20조원을 투자할 경우 법인세에서 공제받는 금액이 1조6천억원에서 3조원으로 1조4천억원 증가한다. 또 개정안은 올해 한시적으로 직전 3년간의 연평균 투자액 대비 투자 증가분에 10% 추가 세액공제를 해주기로 했다. 이 같은 공제율 상향 조처는 법 개정 이전인 올해 1월1일부터 소급 적용한다.
반도체 특별법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4대 그룹이 될 전망이다. 공제 혜택이 커지는 반도체(삼성·에스케이), 배터리(에스케이·엘지), 백신(삼성·에스케이), 디스플레이(삼성·엘지), 수소(에스케이·현대차), 미래형 이동수단(현대차)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계열사들이 대거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15%)은 국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계에서 주요 경쟁자가 있는 대만(5%)을 훌쩍 뛰어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통해 투자 세액공제율을 25%까지 높였지만, 10년간 중국 투자 제한 등 각종 안전장치(가드레일)를 두고 있는터라 우리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4대 그룹 중심의 총 감세액만 연간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애초 기획재정부는 이번에 추가된 수소와 미래형 이동 수단을 뺀 기존 국가전략기술 4개의 시설 투자 공제율 상향으로만 내년에 3조3천억원, 2025년부터는 매년 1조원씩 세수가 줄어들 것으로 계산했었다.
문제는 대기업이 주로 진출한 특정 산업만 세금 공제 비율을 대폭 끌어올리며 다른 업종과의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개정안은 올해 한시적으로 일반 및 신성장·원천기술 분야의 투자 세액공제율도 2∼6%포인트 높이기로 했다. 그러나 내년에 이 조처가 종료되면 국가전략기술과 다른 기술·업종 간 세액공제율 격차는 9%포인트~15%포인트까지 벌어지게 된다.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공제 확대를 요구하며 세금 감면 대상이 대폭 확대돼 세수 기반을 허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16일 이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기재위 조세소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은 “‘미래형 이동 수단’은 배, 자동차, 비행기 등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 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법안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기차 외에 미래형 이동 수단으로 꼽히는 드론이나 도심항공교통(UAM) 등은 아직 연구·개발 단계로 본격적인 생산 설비 투자가 이뤄지기 전이며, 조세특례제한법 하위 법령에 세액공제 대상인 기술과 시설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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