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실무자들 머리가 부쩍 복잡하다고 합니다. 거시 경제 지표와 체감 경기가 따로 노는 것 같다는 건데요.
가장 대표적인 거시 경제 지표는 국내총생산(GDP)이죠.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한국의 올해 1분기 실질 성장률(전분기 대비 실질 지디피 증가율)은 0.3%입니다. 지난해 4분기 -0.4%에서 소폭 반등한 건데요. 애초 한은은 올해 연간 경제 성장률을 1.6%로 전망했지만, 다음달 전망치 하향 조정을 시사한 상태입니다. 이대로라면 올해 우리 경제는 기초 체력(잠재 성장률 2% 내외)에도 못 미치는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리라는 얘기죠.
수출 사정도 나쁩니다. 한국 수출(동월비)은 이달까지 7개월 연속으로 뒷걸음질할 가능성이 크고요. 지난 2월 경상수지도 11년 만에 처음으로 두 달 내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수출 감소, 높은 에너지 가격 여파로 소득은 줄고 씀씀이만 늘어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기재부 직원들을 고민에 빠뜨린 건 체감 경기 지표는 이와 다르다는 겁니다. 국민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경제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일자리인데요. 애초 기재부는 경기 악화 등으로 올해 1분기(1∼3월) 국내 취업자 수가 지난해 1분기에 견줘 마이너스(-)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지난 1분기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39만7천명이나 늘어났는데요. 코로나19 해제로 숙박·음식점업 취업자가 18만9천명이나 늘고, 보건업·사회복지 취업자 수도 돌봄 수요 증가에 힘입어 19만9천명 불어나며 고용 호조세를 이어간 것이죠.
금리가 올랐지만 소비 회복세도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습니다. 고소득층 소비 심리를 반영한 국내 백화점 ‘빅3’ 매출액은 올해 1월에는 전년 대비 3.7% 줄며 주춤했으나 2월 5.2%, 3월 7.2% 늘며 반등했고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국내 카드 승인액도 매달 8% 이상 증가하며 씀씀이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거시 경제 지표는 ‘냉골’이지만 체감 경기는 딴판인 상황이 영 낯설다는 게 정부 실무자들의 고충입니다. 기재부는 매년 6월 말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데요. 정책 방향을 세울 때 기초가 되는 것이 정확한 경기 진단인데, 자칫 실기를 할까 걱정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내수 경기나 일자리 사정이 양호한데도 거시 지표만 보고 부양책을 폈다가 물가만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부 안에서는 “과거엔 반도체 등 일부 대기업만 잘나가는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반도체 업황 영향을 크게 받는 거시 지표만 빼고 나머지는 괜찮은 정반대 상황이 된 것 같다”는 말도 나옵니다. 고물가·고금리에도 체감 경기가 가라앉지 않는 건 금리 인상의 파급효과가 뒤늦게 나타나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좋은 지표만 보며 안심하기보다 체감 경기 악화를 대비한 정책 카드까지 미리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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