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공지능 기업 딥브레인이 수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빠르게 읽고 질문을 생성해내 면접까지 실행해주는 ‘에이아이(AI) 면접관’ 서비스의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사진 속 남자가 인공지능 면접관이다. 딥브레인 누리집 갈무리
“인간적으로 그 많은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다 봅니까?”
면접관으로 자주 차출된다는 한 대기업 전무가 얼마 전 내뱉은 푸념이다. 이런 ‘인간적인’ 한탄은 이제 곧 듣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인공지능이 초고속으로 대량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고 질문을 만든 뒤, 직접 면접까지 하는 ‘에이아이(AI) 면접관 서비스’ 출시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정신적·체력적 한계가 분명한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간의 등장은 ‘인간적인 것’의 종말을 예고한다. 피곤을 모르는 초인적 노동력으로 방대한 자료를 집어삼키고 자신만의 결과물을 생성해내는 그는 ‘초거대 인공지능’이자 ‘생성 인공지능’이다.
지난해 11월30일 출시된 ‘챗지피티’(ChatGPT)는 불과 반년 만에 신드롬을 넘어 인류 문명의 풍경을 바꿀 기술 발전으로 주목받는다. 오픈에이아이(OpenAI)가 출시한 챗지피티는 2개월 만에 사용자 1억명을 돌파했고, 지난 3월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가 공개되자 다양한 서비스와 폭발적으로 결합하고 있다. 조급해진 구글이 ‘바드’(Bard)의 실험 버전을 공개했고, 네이버와 카카오도 ‘한국형 지피티’의 연내 출시를 선언했다.
최근 인공지능 면접관 서비스의 베타테스트를 시작한 기업은 딥브레인이다. 이미 방송인 김주하, 골프선수 최경주 등을 ‘인공지능 인간’(AI 휴먼)으로 만들었다. ‘에이아이 면접관’이 피면접자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은 뒤 질문을 생성해 면접 준비를 마치는 데는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얼굴, 표정, 목소리, 말투까지 복제할 수 있는 에이아이 휴먼과 에이아이 면접관이 만난다면 피면접자는 그가 사람인지 인공지능인지 눈치조차 채기 어려울 것이다.
에이아이 휴먼을 만드는 기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2020년 엠비엔(MBN)이 ‘에이아이 김주하’ 앵커를 만들 때만 해도 얼굴, 표정, 몸짓, 목소리, 말투 등을 생성하려고 추가로 스튜디오에서 270시간가량을 촬영했다. 하지만 2023년 공개된 에스케이텔레콤(SKT)의 ‘에이아이 최경주’는, 기존 골프 경기 영상과 인터뷰만으로도 충분했다. 심지어 사진 한장으로 소년 최경주의 동영상을 만들어냈다. 30분 정도의 음성파일만 있으면 목소리는 물론 말투까지 완벽하게 생성해낸다. 엔씨소프트(NCSOFT)는 게임 이용자들을 위해 ‘인공지능 인간’ 대량 생산을 연구 중이다.
초인간적 존재는 교육 분야에도 등장했다. 학생 개개인의 학습 능력에 맞춰 가르치고 싶었지만 여력이 없다는 교사들의 인간적 고민쯤은 인공지능 교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교육 기업들이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인공지능 교사는 한 아이에게 집중해서 매시간 매초의 데이터까지 수집해 학생이 원할 때마다 상담하고 가르친다. 1:1 맞춤 교육에 새 지평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에이아이 연구소를 별도로 운영하는 에듀테크 기업 ‘아이스크림에듀’는 최근 초등학생 홈러닝 서비스 ‘아이스크림 홈런’을 통해 에이아이 생활기록부를 선보였다. 전용 학습기로 수집되는 하루 1600만건의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별 학생의 정답률, 학습 패턴, 문제풀이 시간, 오답 문항 특성 등을 분석해 맞춤으로 제공한다. ‘인공지능 개인교사’는 학생이 졸려하는지 파악하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부터 안 좋은 문제풀이 습관까지 짚어준다. 학부모 상담도 생성 인공지능 몫이다.
메가스터디교육도 학생들에게 개인별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생성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했다. 교재를 풀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스마트펜을 대면 바로 해설이나 정답 풀이를 볼 수 있고, 학생이 오답을 내면 생성 인공지능이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만들어 제공한다. 학생이 원할 때 교사가 즉시 상담에 나서고 취약한 부분을 분석해 안내한다. 한 학생은 “내가 원하는 해설만 확인할 수 있으니 시간 낭비가 줄었다”며 “아이콘을 눌러 선생님에게 바로 질문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의료 분야의 변화도 극적이다. 의료 인공지능 기업 ‘루닛’(Lunit)은 흉부 엑스레이나 유방 촬영술을 하고도 암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 암 진단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루닛 인사이트’를 개발했다. 지난 3월 현재 이 솔루션을 도입한 의료기관은 전세계에 2천곳이 넘는다. 한 의료기관 관계자는 “루닛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대용 엑스레이로 병원을 방문하기 힘든 노인 환자에게 암 검진을 실시하게 된 건 놀라운 발전이다. 이 기술을 더 많은 의료 시스템에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방대한 판결문을 축적한 법률 분야는 생성 인공지능에 좋은 먹잇감이다. 법조계에는 초인간 서비스의 등장으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소속 변호사들의 온라인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 이용을 금지한 대한변호사협회와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0억원씩을 부과했다. 변협은 로톡이 법률서비스를 상업화한다고 비판한다. ‘로톡’은 변호사와 의뢰인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최근에는 의뢰인의 상담글을 300자 내외로 요약해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한 법무법인 소속 30대 변호사 ㄱ씨는 “상담글을 읽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인공지능이 요점을 정리해주니까 부담이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엔 서면 작성을 위한 자료 검색, 특히 영어 논문 검색에 챗지피티를 유용하게 쓰고 있다”고 했다.
여러 논란에도 법률 산업에 생성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리걸테크’ 서비스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유료 회원제로 운영되는 ‘엘박스’는 변호사들이 직접 올린 230만건 이상의 판결문 데이터로 인공지능을 학습시켜 관계 법령뿐 아니라 유사 판례까지 찾아준다. 인텔리콘연구소, 로앤굿 등은 챗지피티를 활용한 법률 상담 서비스를 출시했다.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장기적으로 리걸테크 분야가 소송 결과를 예측하고 온라인 분쟁을 해결하는 데까지 확대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아예 법원에 생성 인공지능을 도입해 판결문을 작성하도록 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지난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법원이 내부용 지피티(GPT)를 자체 개발해 판사들에게 ‘에이아이 도우미’를 붙여줘야 한다”며 “지금은 판사들이 사건 결론을 내리는 데 30%, 판결문을 쓰는 데 70%의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에이아이가 도입되면 판결문 작성에 드는 노력을 30%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해커에 맞서 방패를 두껍게 해야 하는 보안업계의 발걸음도 바쁘다. 챗지피티를 세상에 내놓은 오픈에이아이는 지난 1일 회사 누리집을 통해 챗지피티 기술을 접목하려는 보안회사에 100만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공격은 한번만 정확하면 되지만 수비는 늘 100% 정확해야 한다”며, 해커와의 싸움에서 늘 불리한 입장이었던 보안 업계가 생성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판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김휘강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교수가 창업한 ‘에이아이 스페라’(AI Spera)는 지난 4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전세계에 있는 아이피(IP) 주소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사이버 위협을 감지하는 검색엔진을 공개했다. 방문할 웹사이트가 악성인지 아닌지, 우리 서비스에 접속하는 유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평판 정보를 생성해 제공함으로써 선제적으로 대처한다는 취지다. 김 교수는 “해커들도 생성 인공지능을 활용하면서 최근 사기(피싱) 이메일이나 악성 사이트의 조악했던 번역형 문장이 유려하고 매끈해졌다”며 “인공지능을 통해 보안 기술도 고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폰 탄생에 비견할 만한 지각변동’, ‘제2의 증기기관 발명’ 등 생성 인공지능이 몰고 올 변화를 수식하는 문구는 화려하다. 초인간 시대의 아찔한 변화 속도는 지난 3월 말 인공지능 전문가 2만여명이 “6개월만이라도 인공지능 개발 실험을 멈추자”고 한 다급한
호소마저 집어삼켰다. 구글이 시험 운영 중인 생성 인공지능 ‘바드’에 이 변화의 속도와 파장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23년 6월11일 현재, 생성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는 수천개에 달하고 서비스가 나오는 속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생성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생성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