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일대 아파트단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2020년 ‘임대차3법’에 따라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최근 전세시장의 최대 위험으로 떠오른 ‘역전세’ 현상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 계약을 갱신할 때 임대료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한 결과, 최근처럼 전셋값 급락기에도 집주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한겨레>가 20일 부동산아르(R)114에 의뢰해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2021년 하반기 서울의 전세 계약 아파트 7만2295건 중 올해 상반기에 같은 단지·면적·층에서 거래돼 전셋값 비교가 가능한 2만8364건을 분석한 결과, 현재 전셋값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하반기에 계약 만료일이 닥치는 전세 주택의 58%(1만6525건)가 2년 전보다 전세금이 하락한 ‘역전세’가 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 가운데 2021년 하반기 ‘신규’ 전세 계약이 이뤄진 아파트 1만1454건을 대상으로 따로 집계했더니, 올해 역전세 현상이 빚어지는 주택의 비율은 84%(9656건)로 크게 높았다. 이와 달리 당시 ‘갱신’ 계약을 했던 아파트 1만734건은 올해 역전세 비율이 34%(3654건)에 그쳤다. 신규 계약에 견줘 갱신 계약의 역전세 비율이 50%포인트 낮은 셈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 주거안정을 위해 임대차 계약 만료 때 1회에 한해 종전 임대료의 5% 이내로 인상하는 조건으로 재계약할 수 있는 권리다. 지난 2020년 7월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할 지는 선택 사항이지만 2021년 하반기는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크게 오른 때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대부분 갱신요구권을 사용했던 시기다.
실제로 2021년 6월부터 전세의 갱신 또는 신규 계약 여부가 표기된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보면,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의 경우 2021년 7월 신규 계약 전세가격은 12억~12억5천만원이었으나 갱신 계약의 전세가격은 7억3500만~8억원으로 최대 5억원의 가격 차이가 났다. 같은 주택형이지만 당시 갱신 계약을 맺은 집주인들은 신규 계약에 견줘 전세금 5억원의 이자 상당액을 손해보는 셈이었다.
그러나 올해 6월 현재 헬리오시티 84㎡의 신규 전세 실거래 가격은 9억3천만~9억8천만원으로 떨어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2년 전 신규 계약을 맺었던 집주인은 시세 하락분 3억 가량을 임차인에게 내줘야 하는데 반해 당시 갱신 계약을 했던 집주인은 이번 신규 계약 때는 추가로 2억원 정도를 더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 전체로 보면, 2년 전 신규 계약한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내줘야 할 시세 하락분은 평균 1억6088만원, 갱신 계약을 했던 집주인이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시세 상승분은 평균 6729만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전셋값 급등을 불러온 원인으로 ‘임대차3법’을 지목하고 대선 당시 폐지 공약까지 내놨지만, 이는 도입 초기 부작용을 확대해석한 측면이 크다고 지적한다. 최민섭 호서대학교 부동산자산관리학과 교수는 “임대차3법은 도입 당시부터 정쟁의 대상이 돼 그 효과나 한계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생략됐다”며 “전셋값 하락 국면에서 집주인들의 파산까지 위협할 수 있는 역전세를 줄이게 된 것은 예상치 못했던 시장 안정 효과”라고 말했다.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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