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소비자물가가 2%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는 정부와 달리 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전혀 다르다. 물가가 최소 두 자릿수 올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주부가 장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집었다 놨다, 집었다 놨다, 벌써 몇번인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던 40대 초반의 주부는 “올라도 너무 올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 압박으로 라면값 등 일부 품목을 50~100원씩 내린다고 하는데 물가인하 효과를 체감하긴 힘들다. 바구니에는 쪽파와 양배추, 돼지고기 등 끼니를 위한 식료품이 담겨 있다. 그는 “몇 가지 안되는데도 10만원을 썼다”며 “남편 월급이 그대로여서 지출을 줄여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3%다.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2월 5.0%에서 올해 1월 5.2%로 소폭 반등한 뒤 2월 4.8%, 3월 4.2%, 4월 3.7% 등 내림세다. 언뜻 물가가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착시다. 정확히 말하면 물가가 아니라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긴 하는데, 국제유가 영향 등으로 그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는 게 물가당국의 설명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전혀 다르다. 물가가 최소한 두 자릿수 올랐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실제로 5월 목욕료는 14%나 뛰었고, 라면 뿐만 아니라 짜장면과 냉면값도 크게 올랐다. 목욕료 상승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가공식품 물가도 심상찮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3% 올랐지만 가공식품은 7.3%, 외식 물가는 6.9%로 전체 물가 상승률을 갑절 넘게 앞질렀다. 앞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서 올해 1분기 생활필수품 가격을 조사했더니, 장바구니 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12.5%나 올랐다. 생활필수품 39개 품목 중 가격변동률 확인이 가능한 35개 품목을 분석한 결과 달걀을 제외한 모든 품목의 가격이 상승했다. 가격 상승률이 높은 5개 품목은 식용유(28.1%), 마요네즈(27.8%), 밀가루(24.1%), 참기름(20.3%), 케찹(19.8%)이었다. 같은 기간 정부가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5배가량 높은 수치다.
목욕료 14% 뛰고 짜장면·냉면도 급등
지표상으로 공식물가는 둔화하고 있다는데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가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청이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기준으로 458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달리 일반소비자들은 이 중 일부를 소비해 구입 품목이나 빈도에 따라 느끼는 체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올들어서는 먹거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체감물가를 끌어올린 측면이 강하다. 직장인은 점심값, 주부는 밥상물가, 자영업자는 전기·가스와 재료값에 민감하다. 기저효과도 착시의 원인이다. 지표상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5월 5.4%, 6월 6.0%, 7월 6.3%로 정점을 찍고 올들어 점차 떨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물가가 많이 올라 올해 상대적으로 덜 올라 보이는 것이지 지표물가 3%대는 결코 적게 오른 것이 아니다. 2000년 이후 가장 고물가 시대로 꼽히는 이명박 정부의 재임 5년 동안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였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물가상승률이 어느정도 수준인지 가늠할 수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표만 보면 물가가 떨어진 걸로 착각을 하는데, 작년 5%대로 오른 것에서 올해 3%대로 올랐으니 굉장히 높은거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고물가 기조에 있고 물가상승분을 반영한 실질소득이 줄어들면서 체감물가는 더더욱 해소가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질소득 감소는 구매력 감소로 이어지고 내수 부진과 경기침체를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간단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전체 가계의 명목소득은 늘었지만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실질소득은 정체인데 물가가 이렇게 뛰니 직장인들 사이에서 “내 월급 빼곤 다 오른다”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주목할 대목은 전체 가구를 소득별로 5분위로 나누었을 때 소득하위 20%인 1분위의 실질소득이 1.5%, 2분위와 3분위 실질소득은 각각 2.4%, 2.1% 줄었다는 점이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했을 경우 중·하위층의 실질소득은 되레 줄었다는 얘기다.
소득하위 20% 가구 중 62% ‘적자살림’
치솟는 물가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전체 지출 중 식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은 식료품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큰 타격을 받는다. 저소득층일수록 물가 체감도가 높은 이유다.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소득하위 20% 가구는 올해 1분기에 월평균 처분가능소득 85만8천원 중 45.5%(39만1천원)를 식비로 썼다. 매달 쓸 수 있는 돈에서 식비로 절반 가까이 지출했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소득상위 20% 가구는 13.3%를 식비로 지출했다. 처분가능소득은 세금이나 연금 같은 비소비 지출을 제외한 것으로, 가계가 실질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소득하위 20%의 처분가능소득 중 식비 지출 비중은 1%포인트 감소했다. 물가고에 가계살림이 쪼들리면서 식비 비중을 조금이라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고물가는 또 벌이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를 대거 양산했다. 소득하위 20% 가구 가운데 적자가구 비중은 62.3%로 코로나19 이후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득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85만8천원이었으나 소비지출은 131만9천원으로 매달 46만1천원 적자를 냈다. 전년 동기에 견줘 적자폭이 47.2% 늘었다.
물가 오름세, 언제까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8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6월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 후반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공급 쪽 물가상승 압력이 완화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가 4% 안팎의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은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국제유가 상승,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 등 국내외 비용 인상 압력이 추가로 발생할 경우 비용 인상 압력의 2차 파급효과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물가 오름세는 여기서 그칠 기세가 아니다. 상반기에 미뤄졌던 대부분 공공요금이 하반기 인상을 예고한 터다.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물론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요금도 오를 예정이다. 다른 지자체도 교통요금과 상하수도 요금, 쓰레기봉투값 등 줄인상을 예고했다. 모두 실생활과 밀접한 것들이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먼저 한국 경제의 외생변수 중 하나인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의 불확실성이다. 설탕과 원유 등 원재료 가격도 꿈틀대고 있다. 현재 국제 설탕 가격은 급등세다. 소금에 이어 설탕 가격 상승세는 가공식품 가격에 영향을 준다. 설탕을 원료로 사용하는 각종 식품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유값도 크게 오른 상황인데 낙농가와 유업체가 올해 원유 가격을 정하기 위한 협상결과에 따라 가격이 또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4%로 오름폭이 약간 둔화됐지만 연방준비제도(Fed)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제롬 파월 의장은 금리결정의 지표로 삼고 있는 근원물가가 여전히 높고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보다 너무 높다는 점을 언급하며, 추가 긴축(금리 인상)을 시사한 바 있다. 그는 6월21일(현지시각)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참석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28일에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 참석해 “현재 통화 긴축의 정도가 충분하지 않다”며, 하반기 연속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놨다.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주어진 긴축 카드를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관치 논란 불사, 가격통제 나선 정부
물가고에 민심이 흔들리자 정부는 직접 가격통제에 나섰다. 어딘지 기시감이 든다. ‘정부 말을 안 들으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을 가했던 과거 이명박 정부와 비슷하다. 집권 초기 급등하는 물가에 쫓긴 이명박 정부는 ‘MB물가지수’라는 이름으로 52개 품목을 선정해 특별관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기업 팔을 비틀어 눌렀던 제품가격은 일정 시간이 지나자 두더지마냥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경쟁사가 먼저 가격을 올리면 나머지 업체들이 시차를 두고 따라 올렸다. 물가 상승의 근원적 문제를 놔두고 특정 품목 대상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물가를 잡으려했던 게 실패의 요인이었다.
정작 물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수입물가를 끌어올렸고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과 맞물려 물가상승의 폭을 더 키웠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고집하면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긴 것도 물가상승에 영향을 끼쳤다. 당시 여권에서조차 “저금리·고환율로 기업만 덕보고 서민들은 물가 피해를 봤다”며, 정책 실패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출범 초기 ‘시장 친화적 물가관리’를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는 어느새 시장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MB 물가관리 방식을 닮아가고 있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 라면과 빵 같은 먹거리 가격 인하야 반길 일이지만, 특정 품목 몇 개 잡는다고 물가가 잡힐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1.4%로 낮춰잡았다. 정부 계획대로 하반기 정책 역량을 경기 회복에 집중하려면 내수 진작을 위한 소비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민·중산층의 소득을 안정화시켜 소비지출을 늘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소득 대비 소비지출의 비율을 나타내는 소비성향은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높다.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를 위한 지출을 훨씬 많이 하기 때문이다. 올해 1분기에 소득상위 20%의 처분가능소득은 소득하위 20%보다 10배 이상 많았지만, 소비성향은 소득하위층이 2.7배나 많았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국민 입장에서 물가 인상 폭과 시기를 조율하는 것은 어느정도 필요하다”면서도, “고물가 시대 민생대책이라면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넓혀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