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동제약, 녹십자 등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정부가 구매하는 백신 조달 입찰에서 7년간 일상적으로 담합을 저질러온 사실이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총 과징금 409억원을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입찰담합 만연으로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20일 “백신제조사 1곳, 백신총판 6곳, 의약품도매상 25곳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사전에 낙찰 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담합행위는 2013년 2월∼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입찰에서 진행됐다. 170개 백신의 총 입찰규모는 7천억원에 달한다. 이들이 담합한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무료 접종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으로, 인플루엔자·간염·결핵 백신 등 24개 품목이다.
이들은 백신입찰 시장에서 장기간에 걸쳐 들러리 관행이 굳어져 손쉽게 입찰담합을 실행할 수 있었다. 낙찰예정자는 전화 한 통으로 쉽게 들러리를 섭외했다. 조달청은 시장가격과 직전 계약가 등을 참고해 ‘기초금액’을 제시하는데, 낙찰예정자는 기초금액에 가깝게 가격을 써내고 들러리는 기초금액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을 썼다.
실제 이 사건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약 80%인 117건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다. 조달청이 제시한 기초금액 수준에서 낙찰을 받은 것이다. 낙찰률은 낙찰금액을 기초금액으로 나눈 수치인데, 보통은 최저가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되기에 대개 100%를 넘지 않는다.
이들 업체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409억원(잠정)을 부과받았다. 입찰 가담 업체 가운데 유일한 백신제조사인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3억5100만원을 부과받았고, 백신총판의 경우 한국백신판매에 71억9500만원, 녹십자에 20억3500만원이 부과됐다. 가장 많은 과징금을 부과받은 회사는 의약품도매상인 에이치원메디로 115억5200만원이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이번 입찰담합으로 정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국내 백신 시장에서 수입, 판매 및 공급을 맡은 사업자들이 장기간에 걸쳐 가담한 입찰담합을 제재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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