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폭염 등으로 농축산물 피해가 커지며 ‘밥상 물가’도 들썩일 조짐이다. 9월 추석을 앞둔 먹거리 수요 증가와 공공요금 인상,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중단에 따른 식량난 우려에다 물가 불안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된 모양새다. 정부는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공산은 낮다면서도 가격 급등 품목을 중심으로 공급 대책을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 자료를 보면, 이번 호우로 농작물 침수, 낙과 등 피해를 입은 지역은 이날까지 3만4583헥타르(㏊, 1㏊=1만㎡)다. 서울 여의도 면적(290㏊)의 119배다. 축사·비닐하우스 등이 무너지거나 쓸려나간 시설 피해 면적은 약 59헥타르, 폐사한 닭·오리 등 가축은 82만5천마리다. 채소·과일·육류 공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셈이다.
폭우의 직격탄을 맞은 일부 채소류는 이미 가격 급등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 유통정보’를 보면, 적상추(중품) 100그램(g) 소매가격은 이달 19일 1290원으로 한주 전에 견줘 9.6% 뛰었다. 한달 전과 비교하면 100.3%, 과거 5년치 평균 가격 대비로도 62.9% 높은 수준이다. 한달 만에 상추 값이 두배가 된 셈이다. 시금치와 얼갈이배추 가격도 일주일 새 각각 24.1%, 13.5% 급등했다.
장맛비 뒤에 찾아온 폭염과 태풍 우려, 추석 성수기 농축산물 수요 급증 등으로 그간 안정세를 보인 먹거리 중심의 생활 물가가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오는 까닭이다. 농·축·수산물은 지난해 11월부터 매달 0~1%대(전년 동월 대비, 올해 3월 제외) 가격 상승폭을 보이며 ‘물가 안정’에 톡톡히 기여해온 품목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항구 봉쇄 재개로 인한 글로벌 곡물난 재개 가능성, 전기요금 등 국내 공공요금 정상화 등도 물가 불안을 부추길 여지가 있다. 러시아는 지난 1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위한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밀과 옥수수 공급에서 각각 세계 6위, 3위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과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 국제 밀 가격 폭등 등 식량난 재연 가능성도 적지 않다.
‘물가 안정’을 최대 경제정책 성과 중 하나로 내세워온 정부도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충남 공주시 양계 농장과 충남 청양군 과수 농가를 찾은 자리에서 “밥상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도 하루 뒤인 20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했다.
정부는 21일 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집중 호우로 인한 농축산물 피해 지원 및 수급 안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비축 물량 방출, 가격 불안 품목의 수입 확대, 농가의 조기 출하 독려 등 농축산물 공급 확대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추는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가중치가 1000분의 0.6”이라며 “불확실성은 있지만, 7월 물가 상승폭은 전달보다 더 둔화하고 8~9월 약간 오른 뒤 10월부터는 다시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채소류 등이 전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아 물가 기조 자체를 바꿀 거라 보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