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7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안정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농업 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물가 잡기의 총대를 멘 모습이다. 여당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과 ‘현장’을 강조한 직후 연일 업계를 향해 “물가 안정에 협조하라”고 압박한다.
이런 움직임은 윤 대통령이 참모진에게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라”고 지시한 이달 19일부터 본격화했다. 한훈 농식품부 차관은 이날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시로 산하기관 및 협회, 대형마트 3사 실무자들을 불러 모았다. “업계가 가격 인상 요인을 최소화하는 등 국민 장바구니 부담 완화를 위해 적극 협조해 주길 바란다.” 이날 농식품부 실장도 제너시스 비비큐(BBQ) 그룹 본사를 찾아 치킨업계 등 외식업체들에 전사적인 원가 절감 노력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한 차관은 20일에도 씨제이(CJ)제일제당 등 16개 식품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어 “부당한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8일 22개 식품·외식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 달여 만에 또 업계를 소집해 같은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이중 씨제이·오뚜기·농심 등 12개 업체는 두 회의에 모두 불려 나왔다.
앞으로 계획된 일정도 많다. 이달 24일 씨제이제일제당 인천공장 및 한국양계농협 평택 계란유통센터, 25일 이마트 세종점, 26일 피자알볼로 본사 등을 찾을 예정이다. 겉으로는 ‘현장 점검’이라는 명목을 붙였지만, 업계 생각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한 전직 경제부처 관료는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엄연히 구분되지만, 현 정부는 그런 인식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산물 수급 관리와 생산성 제고, 유통 구조 개선 등 농식품부의 본래 임무가 아닌, 엉뚱한 시장가격 압박에만 열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친시장을 강조해온 정부가 과거 이명박 정부 때처럼 정부 부처를 앞세운 업계 압박에 나서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엠비(MB) 정부 때도 농식품부는 담당 공무원 실명으로 농·축·수산물 물가를 관리하는 실명제를 시행한 바 있다.
이런 정책은 물론 득보다 실이 크다. 물가 안정의 실효성은 크지 않고, 단순히 가격 인상 시기를 뒤로 늦추며 시장구조 및 수요 왜곡 등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농식품부가 이제라도 보여주기식 현장 행보를 중단하고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을 완화할 제도 개선, 빈틈없는 방역 등 정부가 꼭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박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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