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수사 대상에 놓인 기업인데, 말 한마디 무게가 큰 대통령이 대놓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아니냐.”
윤석열 대통령이 “카카오의 택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고 사실상 카카오모빌리티를 작심 비판하고 나선 가운데, 관련 업계에선 대통령 발언이 갖는 무게를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플랫폼 독과점 문제 관련 공론장에 불쑥 끼어들어 ‘판을 엎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카카오와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각각 수사·감리 선상에 오른 상황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한 택시기사가 “카카오 택시(택시 호출 플랫폼)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가 너무 심하다”고 언급하자, “카카오의 택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며 행태를 세세하게 짚으며 비판했다. 이어 “(카카오 택시의 행태는) 소위 약탈적 가격이라고, 돈을 거의 안 받거나 낮은 가격으로 경쟁자를 없애버리고, 유입시켜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독점이 됐을 때 가격을 올려서 받아먹는 것”이라며 “독과점 행위 중에서도 부정적인 행위 중 아주 부도덕한 행태다”, “정부가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횡포’, ‘부도덕’이란 표현을 쓰며 특정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것을 두고 “미래성장 플랫폼 사업에 과도한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한 정보통신업체 부장급 직원은 “카카오택시 플랫폼 수수료 체계가 택시사업자나 이용자에게 부담되는 것은 맞지만, 미래성장 플랫폼 사업에 과도한 개입으로 비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서치원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는 “산업적인 고려 없이 불쑥 ‘부도덕’ 언급하며 특정 기업을 겨냥한 대통령 발언은 그저 이슈 터질 때마다 ‘제재하겠다’는 땜질식 처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어떻게 하면 플랫폼 기업들이 덩치만 키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혁신을 할 수 있게 할지 고민 없이 특정 기업 때리기식으로 넘어가는 건, 그동안 곪은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게 한다”고 짚었다.
시세조종과 분식회계 등 의혹으로 각각 수사·감리 대상에 오른 카카오와 카카오모빌리티를 두고 ‘반드시 제재해야 한다’고 언급한 대통령 발언을 두고도 “위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다른 택시 호출 플랫폼에 대한 ‘콜 차단’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도 받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 대주주 카카오(57.31%)는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한 대기업 부장급 직원은 “검찰 수사와 규제당국 조사·감리를 받고 있는 기업인데, 대통령이 대놓고 가이드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통령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게가 큰데, 한 기업을 제재해야 한다는 건 과하게 보인다. 부도덕의 잣대로 평가하는 건 더욱 위험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이 있고 추가 조사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부도덕하다’, ‘제재하겠다’ 언급하는 건 수사 가이드라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전 후보 시절 플랫폼 기업의 과도한 수수료 부과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이용 소상공인‧자영업자, 소비자 등이 자율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우선으로 꼽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한겨레에 “거래상 우월적 지위의 남용 문제는 플랫폼 이용 소상공인‧자영업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아직 만연해 있는 불공정 거래행위의 문제”라며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규제의 강화로만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도로 높아진 이유는 그만큼 플랫폼화가 가치를 창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랫폼 사업자와 이용 소상공인‧자영업자, 소비자 등이 자율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이를 우선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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