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자·배당소득이 연 2천만원을 넘는 고액 금융 자산가 20만여명에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허용해 투자 수익에 붙는 세금 부담을 확 줄여주기로 했다. 개인자산관리계좌는 서민·중산층의 자산 형성을 위해 예·적금, 펀드·주식 등 금융상품 투자 이익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절세 만능 통장’이다. 감세를 통해 자산가의 여윳돈을 증시로 끌어들여 주가를 올려보겠다는 이른바 ‘증시판 낙수효과’를 염두에 둔 정책이다.
정부는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거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 정책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국가와 사회가 계층의 고착화를 막고 사회의 역동성을 끌어올리려면 금융 투자 분야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기업은 자본시장을 통해서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서 성장하고, 국민은 증권시장에 참여함으로써 자산 형성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발표한 대책의 핵심은 자산 형성을 위한 금융상품 세제 지원 확대다. 우선 개인자산관리계좌의 납입 한도를 기존 연 2천만원(총 1억원)에서 연 4천만원(총 2억원)으로 2배 확대한다. 해당 계좌에서 발생한 투자수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 비과세 한도도 현행 200만원(서민·농어민용 400만원)에서 500만원(서민·농어민용 1천만원)으로 올린다.
특히 국내 주식과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국내투자형 개인자산관리계좌’를 새로 만들어 금융소득 종합과세자(약 19만명·총인구 대비 0.4%)도 가입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연간 이자·배당소득이 2천만원을 초과해 금융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소득세를 내는 고액 자산가들은 세제 혜택을 통한 서민·중산층 자산 형성 지원이라는 개인자산관리계좌의 도입 취지에 따라 이 상품 가입을 제한해왔다. 앞으로 개인자산관리계좌 가입 문턱을 낮추면 금융소득 종합과세자는 국내 주식과 주식형 펀드 투자를 통해 받는 배당에 붙는 소득세 세율이 최고 49.5%(지방소득세 포함)에서 15.4%로 뚝 떨어진다.
윤 대통령은 이날 토론회에서 사전 예고 없던 상속세 완화 추진 뜻도 내비쳤다. 그는 “대주주 입장에서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재벌·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웬만한 상장 기업들도 가업 승계가 불가능해진다”며 “국민들께서 (이런 점을) 다 같이 인식하고 공유해야 과도한 세제를 개혁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자 감세 비판 여론에 제동이 걸린 상속세 완화를 재추진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또 “미국 사회는 겉으로 볼 때 자본가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할 것 같지만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며 “이는 많은 국민이 주식투자와 연기금에 참여하기 때문에 계급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오 배지현 기자 pjo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