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산업·에너지 분야 연구개발(R&D) 사업을 ‘고위험·대형 과제’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했다. 초격차 기술 투자와 시장 성과를 중시하겠다는 것인데, ‘대기업 쏠림’이 심해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발표한 ‘산업·에너지 연구개발(R&D) 투자 전략과 제도 혁신 방안’에서 △고위험·차세대 기술 확대 △시장 성과 극대화 △수요자 중심 프로세스 △인재 양성 등 4대 혁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 예산(26조5천억원) 중 산업·에너지 분야는 약 20%(5조1천억원)가량이다.
정부는 우선 기업과 민간이 투자하거나 도전하기 어려운 차세대·고난도 기술 과제를 확대할 계획이다.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실패 확률이 높지만 미래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집중 지원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11대 분야 40개 ‘초격차 프로젝트’에 올해 신규 예산의 70%를 배정하고, 민관 합동으로 약 2조원(정부 1조3천억원)을 투자한다. 산업별 초고난도 과제에는 매년 신규 예산의 10%(약 1200억원)를 투자한다. 산업부는 “우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이나 4메가 디(D)램처럼 산업 발전에 획을 그을 만한 성과 도출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시장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대형 과제 중심으로 지원 체계를 개편한다. 지난해 연구개발 사업 280개를 올해는 230개로 통합해, 100억원 이상 대형 과제를 지난해 57개에서 올해 160개로 늘릴 계획이다. 산업부는 “그동안 분절된 소규모 요소 기술 과제들이 연구개발로 끝나지 않도록 대형・장기 투자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의 자금 부담도 줄여준다. 이전에는 연구비 중 기업 부담분을 60%까지 현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 비중을 15%까지 낮추고 인력·설비 등 현물 투입을 늘려줄 계획이다.
초격차·대형 과제 대부분은 반도체·이차전지·미래차·바이오 등이어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국내 대기업에 쏠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 분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연구개발이 대형화하면 선단식 구조로 대기업 중심이 되고, 예산 배정이나 성과 평가에서도 불리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산업부 관계자는 “기초과학 원천기술(과학기술부)과 혁신 스타트업(중소기업벤처부)과 달리 산업 분야 알앤디는 실질적으로 미래 시장과 비즈니스를 만드는 데 더 무게를 둬야 한다”며 “정부 출연연이나 대학, 중소·중견기업들도 개발 부담과 수요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회승 기자 hon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