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계열 증권사 현황
현대차, 신흥증권 인수…두산·롯데 등도 잰걸음
M&A 불붙을 듯 …대기업이 금융 쥐락펴락 우려
M&A 불붙을 듯 …대기업이 금융 쥐락펴락 우려
내년 초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재벌들이 막강한 자본을 바탕으로 너도나도 증권업에 진출하거나 관련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대기업의 증권업 진출과 규모 확대가 속도를 내면서 증권업계에는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외환위기 이후 완화됐던 재벌들의 제2금융권 지배를 강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증권업계의 새판 짜기를 알리는 신호탄은 재계 2위 현대차그룹이 터뜨렸다. 14일 중소형 증권사인 신흥증권은 현대차그룹과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신흥증권의 최대주주인 지승룡 대표이사와 특수관계인 4인이 보유 지분 29.76%(345만5089주)를 현대차그룹에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증권업 진출을 계기로 업무 영역의 확대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낼 뿐 아니라 자금 조달도 한층 쉬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고위 임원은 “자통법이 시행되면 지급결제 기능을 맡게 되는 증권사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며 “그룹의 금융 계열 부문과 증권사가 상승 효과를 낼 여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지난 5일에는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캐피탈이 위탁매매 중개사인 비엔지(BNG)증권중개를 인수해 증권업에 진출했으며, 롯데그룹도 지난해 12월 대한화재를 인수해 보험 영역으로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증권업 진출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씨제이·동부·동양그룹 등 기존에 증권사를 보유한 그룹들도 금융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증권업 진출을 계기로 중소형 증권사의 인수·합병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선호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신규 설립을 모색하던 현대차그룹이 기존 증권사 인수로 선회한 것은 증권사 신설 이후 인력 확보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금액과 시간의 기회비용,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시간상 선제 대응을 하기 어려운 점을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중소형 증권사도 구조개편 과정에서 독자 생존이 어려워지는데다, 이번에 상장 증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기준이 제시될 것이므로 앞으로 중소형 증권사의 인수합병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교보·부국·에스케이·유화·한양증권 등이 잠재적인 인수합병 매물로 거론되며, 대우증권 등 일부 대형사들도 매각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의 제2금융권 진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산업과 금융은 경영의 원리나 전략이 다른 만큼, 자칫 경영을 잘못했다간 해당 그룹은 물론 국민 경제 전체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탓이다. 김기원 방송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핵심 역량에 집중하도록 한 재벌 개혁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자본주의 원리상 금융기관은 산업자본을 감시해야 한다”며 “재벌들이 금산분리 완화 분위기와 함께 제2금융업에 마구 진출하는데, 제2금융권의 지배 현상이 심화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그룹은 과거에 현대투신운용, 강원은행, 울산종금, 한국생명 등의 금융기관을 부실 경영한 책임이 있다”며 “현재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겠지만, 과거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차그룹도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선아 홍대선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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