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치 부활하나
‘고용·투자 늘려라’ 위기극복 뜻은 이해하지만…
#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요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이 장관은 올해 1월 중순부터 엘지, 에스케이, 두산, 한화, 삼성 등 12개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차례로 만나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유지·확대를 주문해 왔다. 이 장관은 12일 오전에도 경제5단체장들을 만나 “잡셰어링이 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이 아니라 임금 낮추기라는 노동계의 불신을 차단해야 한다”며 기업들에 조속히 신규채용 계획을 발표해줄 것을 요청했다.
# 4대 그룹 계열사의 한 간부는 관련 협회로부터 다달이 임직원 수가 몇 명이냐는 질문을 받고 있어 곤혹스럽다. 이 간부는 “예전에는 매출과 수출 상황 정도만을 점검했는데 협회가 정부 요청으로 올해부터 개별 기업의 종업원 수까지 매달 파악하고 있다”며 “당장 인력 구조조정을 할 상황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완화 ‘대가’ 요구…“주고받기 신관치” 비판
기업선 “만기연장해주면 투자 늘릴 것” 속내 비치기도 대기업들은 올해 들어 잦아진 정부의 각종 협조 요청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투자·고용 확대’라는 카드로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고 털어놓는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약자이다 보니 경영상의 부담까지 감수하고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과거 1980년대 산업 합리화 조처나 외환위기 직후 ‘빅딜’(대규모 사업맞교환)과 같은 과격한 방식은 아니지만, 기업의 고유한 경영 영역을 간섭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물론 정부는 이런 요구의 ‘대가’로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와 수도권 규제 완화와 같은 대기업의 ‘민원’을 들어주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로운 관치경제의 부활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정부와 재벌간 유착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의 복잡한 속내는 12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도 얼핏 드러났다. 이날 전경련은 올해 600대 기업의 투자 규모가 지난해와 엇비슷한 87조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고 밝혔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해외 선진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줄이고 있는데 87조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 한도다. 현 상황에서 투자를 무작정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들은 정부의 만남 요청 자체부터 큰 부담으로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불확실한 경제상황 때문에 단기 계획도 세우기 어려운 마당이지만 정부 관계자의 면담을 거절하거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펀드 조성에 수십억원을 낼 예정이다. 이 임원은 “사실상 할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압박감은 인턴,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턴 채용과 대졸 초임 삭감은 정부가 먼저 정책을 내놓고 공공부문에서 시행을 하면, 민간기업들이 이를 따라 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의 직접적인 압력이나 요구는 없었다고 밝히지만, 정부가 드라이브를 거는 데 대해 “부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채용 인원을 밝히는 데 난색을 표했던 기업들이 잇달아 채용 규모를 발표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다. 삼성의 경우 올해 대졸 공채 규모를 5500명으로 확정지었으나, 계열사에서 모아온 수요 인력은 그 절반도 안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 “이 숫자대로는 도저히 못 나간다”는 판단에 일주일 이상 숫자를 높이는 작업과 청년인턴제라는 제도까지 고안해낸 것이다. 엘지도 최근 발표한 투자계획의 경우, 실질적으로 협력업체의 고용과 생산으로 직결될 수 있는 설비 투자는 줄이면서 인건비 위주의 연구·개발 투자를 내세워 전체 수치만 지난해 수준과 맞췄다는 비판적인 시각들도 있다. 물론 정부의 요구는 ‘일방적’이지 않다. 이런저런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하기 때문이다. 재계 역시 좀더 분명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12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뒤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정병철 상근 부회장은 “현재 상장기업 현금성 자산이 71조인데, 그중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가 51조다.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메커니즘이 있다면 투자가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애기가 오갔다”며 “오늘 회의에서 총수들이 중소기업만 차입금에 대해 롤오버(만기 연장)해 주지 말고 대기업도 2~3년 롤오버해 주면 확실히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를 기자들한테 꼭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투자 확대를 무기로 확실한 ‘당근’을 요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정부와 재계가 주고받기를 하는 ‘바터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현 정부 들어 기업에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신관치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우리 기업이 노조 등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이나 협조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정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겪을 수밖에 없는 부메랑”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최우성 기자 miso@hani.co.kr
기업선 “만기연장해주면 투자 늘릴 것” 속내 비치기도 대기업들은 올해 들어 잦아진 정부의 각종 협조 요청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투자·고용 확대’라는 카드로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고 털어놓는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약자이다 보니 경영상의 부담까지 감수하고 요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과거 1980년대 산업 합리화 조처나 외환위기 직후 ‘빅딜’(대규모 사업맞교환)과 같은 과격한 방식은 아니지만, 기업의 고유한 경영 영역을 간섭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물론 정부는 이런 요구의 ‘대가’로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와 수도권 규제 완화와 같은 대기업의 ‘민원’을 들어주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로운 관치경제의 부활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정부와 재벌간 유착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의 복잡한 속내는 12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서도 얼핏 드러났다. 이날 전경련은 올해 600대 기업의 투자 규모가 지난해와 엇비슷한 87조원에 이를 것으로 잠정 조사됐다고 밝혔다. 조석래 전경련 회장은 “해외 선진기업들은 오히려 투자를 줄이고 있는데 87조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최대 한도다. 현 상황에서 투자를 무작정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별 기업들은 정부의 만남 요청 자체부터 큰 부담으로 느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한 대기업 임원은 “불확실한 경제상황 때문에 단기 계획도 세우기 어려운 마당이지만 정부 관계자의 면담을 거절하거나 요청을 무시할 수 없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펀드 조성에 수십억원을 낼 예정이다. 이 임원은 “사실상 할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압박감은 인턴, 신입사원 채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턴 채용과 대졸 초임 삭감은 정부가 먼저 정책을 내놓고 공공부문에서 시행을 하면, 민간기업들이 이를 따라 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의 직접적인 압력이나 요구는 없었다고 밝히지만, 정부가 드라이브를 거는 데 대해 “부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채용 인원을 밝히는 데 난색을 표했던 기업들이 잇달아 채용 규모를 발표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서다. 삼성의 경우 올해 대졸 공채 규모를 5500명으로 확정지었으나, 계열사에서 모아온 수요 인력은 그 절반도 안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 “이 숫자대로는 도저히 못 나간다”는 판단에 일주일 이상 숫자를 높이는 작업과 청년인턴제라는 제도까지 고안해낸 것이다. 엘지도 최근 발표한 투자계획의 경우, 실질적으로 협력업체의 고용과 생산으로 직결될 수 있는 설비 투자는 줄이면서 인건비 위주의 연구·개발 투자를 내세워 전체 수치만 지난해 수준과 맞췄다는 비판적인 시각들도 있다. 물론 정부의 요구는 ‘일방적’이지 않다. 이런저런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하기 때문이다. 재계 역시 좀더 분명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12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뒤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정병철 상근 부회장은 “현재 상장기업 현금성 자산이 71조인데, 그중 1년 이내에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가 51조다. 이런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메커니즘이 있다면 투자가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애기가 오갔다”며 “오늘 회의에서 총수들이 중소기업만 차입금에 대해 롤오버(만기 연장)해 주지 말고 대기업도 2~3년 롤오버해 주면 확실히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를 기자들한테 꼭 전해 달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투자 확대를 무기로 확실한 ‘당근’을 요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정부와 재계가 주고받기를 하는 ‘바터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현 정부 들어 기업에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신관치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우리 기업이 노조 등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이나 협조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정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겪을 수밖에 없는 부메랑”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최우성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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