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투르쿠 조선소에선 세계 최대 크루즈 오아시스호의 제작 마무리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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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유럽 핀란드 투르쿠조선소를 가다
배안에 공원·야외공연장 갖춘 ‘물위의 7성급 호텔’
길이 360m, 22만톤 규모 9400 여명 수용…12월 첫 항해
배안에 공원·야외공연장 갖춘 ‘물위의 7성급 호텔’
길이 360m, 22만톤 규모 9400 여명 수용…12월 첫 항해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은 화물칸 같은 3등석에서 잠을 자고 그들만의 파티를 즐겨야 했지만, 지금이라면 사랑하는 로즈와 다른 세계에 머물지 않아도 될 게다. 대형화·대중화 추세가 뚜렷한 21세기 크루즈엔 1910년대 대서양을 횡단하던 초호화 선박(정확히는 페리선)에 존재하던 계급의 벽 같은 건 없다.
3년여 동안의 설계와 공사를 거친 세계 최대 크루즈인 오아시스오브더시스(오아시스호)의 첫 시험항해를 며칠 앞두고, 핀란드 투르쿠조선소에선 약간 들뜬 분위기가 느껴졌다. 시험항해는 내장공사 등을 마치기 전에 모든 기술적 사항을 점검하는 과정이다. 길이 360m, 너비 47m의 오아시스호는 총톤수(GT) 22만톤에 승객·승무원을 합해 9400여명을 수용한다. 현존하는 최대 크루즈 프리덤호(15만8천톤급)를 규모와 수용 능력 등에서 훌쩍 뛰어넘는 셈이다.
이미 18세기부터 배를 짓던 투르쿠조선소는 2년 전 에스티엑스(STX) 그룹이 아커야즈를 인수하며 에스티엑스유럽 산하 사업장이 됐다. 시스코 헬그렌 프로젝트담당 이사는 “투르쿠조선소는 그동안도 크루즈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왔지만 이번 오아시스호는 기술·디자인 모든 면에서 새로운 혁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실을 포함해 전체 층수가 18개 층에 이르는 오아시스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8층 갑판에 자리잡은 배 위의 육지, ‘센트럴 파크’다. 가운데 공간을 비워내고 양쪽에 높다란 타워형 선실을 배치했다. 베른트 뢴베리 매니저는 “안쪽이 비어 균형을 잡기 어려운데다 필요한 흙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며 배수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야 하는 등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한쪽에선 아이들이 좋아할 회전목마가 막 완성되고 있었다. 갑판 아래 공간까지 햇빛이 전달되도록 만든 태양창 시스템이나,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칵테일 바, 배 후미에 설치돼 별을 보면서 공연을 즐기는 야외극장 등은 이 배가 처음 도입한 것들이다. 객실 2700개 중 80%가 바다 또는 공원 쪽 발코니를 가진 것도 특징이다. 그러면서도 이전 배에 견줘 15~25%가량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량을 개선했고, 안전문제가 생길 때 가까운 항구로 자동적으로 가는 시스템도 갖췄다.
‘물 위의 7성급 호텔’이라 불리는 호화 크루즈들은 대개 정해진 항로를 1주일에서 열흘씩 돌며 몇몇 항에서 정박하게 된다. 세계 2위의 크루즈 선사인 미국의 로열캐리비언이 카리브해에 투입할 오아시스호는, 이미 12월 첫 항해 예약이 대부분 끝난 상태다. 제작 비용은 12억4천만달러(약 1조5500억원), 승객 요금은 세끼 식사와 숙박 포함 1인당 849달러(약 106만원)부터 시작한다. 한때 크루즈선은 서구 부유층의 상징이었지만, 선주사들은 10여년 전부터 대형화를 통해 객실 단가를 낮추며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타이태닉호의 총톤수는 5만톤이 안 됐지만, 90년대 후반 이후 건조된 크루즈선들은 대부분 10만톤급을 넘는다.
노르웨이 오슬로항에 지난주 도착한 이탈리아 선사 엠에스시(MSC) 소속의 오케스트라호에서 만난 니콜라 로툴로 호텔매니저 또한 “2400달러 하던 가격을 900달러로 할인하는 행사를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의 영향을 비껴가진 못하는 것이다. 실제 투르쿠조선소는 내년에 오아시스호와 동급인 얼루어호를 인도하고 나면 이후 추가 수주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선주사들은 대형화·대중화와 함께 아시아 지역을 새로운 시장으로 노리고 있다. 프랑코 필리 오케스트라호 배매니저는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아시아 노선 개설을 회사에서 검토중”이라며 “한국인들의 탑승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투르쿠(핀란드)·오슬로(노르웨이)/글·사진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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