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과 글로벌 금융위기 비교
[열려라 경제] 위기 대응의 위기 진단&전망
유럽발 재정위기 이후 G20 “성장친화적 긴축” 부각
과잉부채 방치할수 없지만 민간 타격 커 ‘딜레마’
유럽발 재정위기 이후 G20 “성장친화적 긴축” 부각
과잉부채 방치할수 없지만 민간 타격 커 ‘딜레마’
‘대공황 2.0’의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심각했던 세계적 금융위기가 예상외로 빨리 진정되면서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이 상향조정된 것이 엊그제인데, 최근 다시 불안요인들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재정긴축 움직임은 대공황 당시인 1933년 성급한 긴축으로 경기회복세가 꺾였던 경험을 상기시킨다는 경고마저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1930년대의 대공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는데, 가장 큰 공통점은 양자 모두 금융시스템의 위기였다는 점이다. 대공황의 직접적인 계기는 1929년의 통화긴축과 그에 따른 10월의 주가 대폭락이었지만, 이후 경기침체에 따른 대출부실 확대 우려로 ‘뱅크런’(은행 예금 인출 사태)이 확산되면서 상업은행들의 연쇄적인 도산이 수차례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는 신용경색의 확산과 금융시스템의 마비, 불황의 장기화로 귀결되었다.
뱅크런이 위기 확산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은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대공황기에는 예금자들의 뱅크런과 그에 따른 상업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문제였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기관투자가들의 뱅크런과 그에 따른 투자은행의 유동성 위기, 즉 ‘그림자은행’ 시스템의 위기가 문제였다는 점이다. 2008년 9월 유동성 위기로 인한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그림자은행 시스템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위기 구조의 유사성은 이후 대응 과정의 유사성으로 이어진다. 대공황기 뱅크런의 경험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 제정,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설립을 통한 예금보험제도 등을 낳았다. 마찬가지로 금번 금융위기의 경험은 그림자금융 시스템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부각시켰으며, 이는 지난 1월 ‘볼커 룰’의 등장, 6월 말 미국 상하원의 금융개혁법안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감독제도의 개선과 규제 강화는 향후의 또다른 금융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것일지언정, 눈앞에 닥친 위기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수단일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 직접적인 위기대응 방식에서 대공황과 금번 위기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후버 정부는 균형재정에 집착하여 재정지출에 소극적이었으며,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은커녕 당시의 통화제도였던 금본위제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반면 금번 위기에서 주요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을 아끼지 않았으며, 정책금리를 과감하게 인하하고 중앙은행을 통한 다양한 유동성 공급책을 시행하였다.
또한 국제경제 환경도 다르다. 대공황 당시에는 대영제국의 쇠퇴 이후 신흥 경제대국인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요국들의 정책공조가 진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었다. 반면 최근의 경우, 위기가 본격화되는 국면이었던 2008년 10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는 보호무역주의 자제를 천명하였으며, 이후에도 위기대응과 향후의 출구전략, 금융규제 개혁 등에서 공동 보조를 논의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위기대응 기조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남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선진국들의 재정상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재정수지 개선을 위한 긴축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이러한 정책기조의 전환은 지난 6월 말 G20 회의에서 “성장친화적 긴축”이라는 모호한 수사로 표현되었다. 이는 적극적인 경기부양과 국제공조 체제, 즉 대공황과 금번 위기를 차별화시켰던 가장 큰 요인이 약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민간부문의 회복세가 탄탄한 궤도에 올라 있다면 괜찮겠지만, 여전히 주요국 실물경제의 회복세가 취약한 상황에서 성급한 긴축은 세계경제의 재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이 과잉부채였다는 점에서 향후 부채 축소(디레버리징)는 필연적이지만, 민간의 급격한 디레버리징에 따른 수요 감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정부지출의 확대(재정적자 확대) 또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또한 재정적자와 과잉부채 문제가 경상수지 불균형을 매개로 하여 국가별로 차별화되어 있음을 고려한다면, 재정수지 악화에 대한 대응은 국가간 정책공조, 나아가 글로벌 불균형의 재조정이라는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재정지출 여력이 양호한 경상수지 흑자국을 중심으로 긴축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대표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인 독일은 재정긴축의 선봉에 서 있으며, 또다른 흑자국인 중국은 국내 경기의 과열 등을 이유로 긴축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재정위기를 계기로 가시화된 국제공조 체제의 균열은 대공황의 경험을 상기시켜 주는 또다른 요인인 셈이다.
최근 주요국 주가지수의 하락을 비롯한 금융시장의 불안한 움직임은 위기대응 정책기조의 변화 가능성과 그 여파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금융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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